현성주 기자의 "우리는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
기자수첩/ 74회 광복절
"우리는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은 우리가 35년간의 일본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역사적인 날이다. 일본 억압에 맞서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로 마침내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으며 올해는 74번째 광복의 날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제2의 광복을 위해 다시 뭉치고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 2일 각료회의를 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1965년 정상화 이래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끌고 가는 무모한 결정을 한 것이다.
우리정부는 일본을 규탄하면서도 대화를 제의했지만 일본은 응하지 않고 있다. 이달 하순부터는 이미 통제 중인 반도체 3대 품목 외에 첨단소재와 전자 등 1120개 품목이 수출규제를 받게 되었다. 일본의 이러한 ‘전쟁’시도는 아베 일본 총리가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일본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한 리스크’가 낮아졌고 아베는 국내에서도 지지율이 떨어지자 새로운 ‘위협국가’를 설정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한국이라는 외부 위협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전쟁을 할 수 있는 헌법의 명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정책은 우리나라의 가파른 성장 때문이기도 하다. 아래의 자료를 보면 일본이 왜 그런지 잘 알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 (명목기준) (한국은행, IMF. 최종확정판)>
년도/ 한일 1인당 국민소득/ 한, 일 국민소득 격차
1980년 (대한민국 1704 달러/일본 9466 달러) 약 5.56배
1990년 (대한민국 6516 달러/일본 2만 5380 달러) 약 3.90배
2000년 (대한민국 1만1948 달러/일본 3만 8536 달러) 약 3.23배
2010년 (대한민국 2만2087 달러/일본 4만 4674 달러) 약 2.02배
2018년 (대한민국 3만 3434 달러/일본 3만 9306 달러) 약 1.18배
이처럼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그들의 턱까지 치고 올라왔기에 일본은 질투심, 경쟁심 등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까기에 이처럼 야비할 정도로 분주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무역전쟁’은 우리민족을 다시 한 번 뭉치게 만들었다. 어느 전문가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위기는 기회다. 한국은 새로운 양국 연대 관계 만들기에 착수해야 한다. 역사 청산의 종착지는 역사적 화해다. 국제정치에서 화해의 시작은 가해자ㆍ피해자를 나누는 일이다. 때문에 한일 간 화해는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아베 정권 이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다. 화해로 가는 과정에서 갈등, 위기, 봉합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외교적 관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전환기가 시작됐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단죄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때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1862~1927) 여사는 아들에게 편지와 수의를 지어 보냈는데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옮은 일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눈물이 쏟아지는 우리 조상들의 나라사랑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는 편지였다.
글/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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