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주 편집국장의 기자수첩/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일
기자수첩/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일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한 기념일이다. 그동안 수립기념일은 1989년까지 한국독립유공자협회에서 주관하다 1989년 12월 30일에 국가 기념일이 되었으며 1990년 기념식부터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동안 수립기념일을 4월 13일로 정해졌지만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역사학계에서 발견한 추가 자료를 비롯해 역사학계의 전반적인 의견에 따라 변경되었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우리민족은 1919년 1월, 고종황제가 서거하자 그해 3.1독립선언대회를 시작으로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조국의 자주독립의 요구하는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3.1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당시 임시정부를 수립한 인사들은 중국 상해에서 오전에 반포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는데 이유는 왕정통치로 멸망한 대한제국을 교훈삼아 대한민국(민주 공화국)으로 흥하자는 깊은 뜻이라고 한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자주독립국가임을 헌법에 명시하고 군주제를 폐기하고 민주공화제정부(근대의 국민 민주주의 정부)임을 밝히고 있다. 사법입법행정부로 3권 분립을 확정하고 기존의 무장단체와 독립군, 독립단체, 독립투사는 물론 지식인, 재외동포, 노동자 농민 지주계급들로 연합 연대하는 민족민주연합전선을 구성했으며 독립국으로서 외교는 물론 일제의 전진기지 괴멸과 그 친일파들을 처단하는 항일무장투쟁의 시대를 선포하는데 바로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 수립 당시의 참여자로는 여운형, 조동호, 손정도, 조소앙, 김철, 선우혁, 한진교, 신석우, 이광수, 현순, 신익희, 조성환, 이광, 최근우, 백남칠, 김대지, 남형우,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신채호, 진희창, 신철, 이영근, 조동진, 여운홍, 현장운, 김동삼 등 29인이었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청사는 처음 상해 프랑스 조계 지역이었지만, 중일전쟁에서 일본의 승전이 계속되자 피난하는 중국의 국민당 정부를 따라 이동했으며 상해를 시작으로, 항주, 가흥, 진강, 남경, 장사, 광주, 류저우, 사천 기강, 중경으로 이동했는데 아직도 이곳에 가면 당시 건물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임시정부는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정식 명칭은 독립공채표, 혹은 대한독립공채표. 상환은 독립 후 정부가 수립된 지 5년 뒤부터 30년 이내에 수시 상환하기로 했다. 독립 후에도 한동안 상환하지 못하였다가 1984년 독립공채상환에관한특별조치법(약칭 독립공채상환법)이 발의, 통과해서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는 그 동안의 이자를 합산하여 상환하였다. 그러나 막상 갚아주려고 보니 일제의 극심한 탄압과 한국전쟁 등 나라의 혼란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어 2013년까지 갚아준 금액은 3억 원 정도에 불과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시정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삼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제 정부였고, 독립운동을 총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이념인 자유주의와 삼균주의는 1948년 대한민국 헌법에 반영되었는데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사의 큰 전환점이었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
이제 중국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의 모범국이 된 대한민국. 세계 경제 강국, 그리고 문화 강국과 잘 이룬 민주주의 등 등 우리가 지금 보유하고 모든 것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만든 우리 선각자들의 정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현성주 기자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