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교수의 ‘여름 밤의 힐링 편지’
지난 3월부터 농사와 조경으로 바빴습니다. 정년퇴임 전까진 마당이나 과수원에서 일할 때 마다, ‘이 시간이면 책 몇 쪽 더 볼 수 있거나 글 몇 줄 더 쓸 수 있는데’ 하거나 ‘공기 좋은 전원에 살며 이 정도 노동은 기꺼이 해야지’하면서 맘이 오락가락했습니다.
퇴임 후부턴 그런 번민이 크게 줄더군요. 지난 3월 대선 이후엔 완전히 사라져버렸고요. 노동을 제대로 즐기게 됐지요. 군데군데 꽃밭 만들어 화초 심고, 텃밭에 채소 기르기, 마당잔디와 과수원 풀 깎기, 소나무 가지치기, 복숭아 봉지 씌우기, 포도 넝쿨 받침세우기.....
과일나무엔 거름 주고 복숭아, 배, 매실 등엔 살충제 뿌리지 않을 수 없기에, 벌레, 새, 사람이 1/3씩 나누자는 희망을 담은 ‘자연계약’을 일방적으로 맺고 무농약 아닌 저농약 농사를 짓습니다. 5월엔 마당 한쪽에 다섯 평 정도 땅을 파고 수백 개 돌을 쌓아 연못을 만들어 수련과 어리연 그리고 금붕어와 비단잉어 등을 넣었습니다. 6월엔 옆 노는 땅에 들깨씨를 뿌렸는데 사람에겐 잘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지만 새들이 어찌 알고 떼로 몰려와 포식하는군요. 이웃 농부들은 고라니 막으려고 밭 주위에 그물을 두르는데, 철없는 저는 작년 가을 과수원 아로니아와 겨울 텃밭의 봄동을 싹쓸이해버리고 가끔 마당에까지 올라오는 고라니를 벗으로 삼으니 그물 칠 생각은 전혀 없고요.
아무튼 오뉴월 대낮 땡볕 피하려고 새벽부터 일하면 낮잠 즐기게 되고, 저녁에 일 마치면 밥 먹으며 막걸리 한 잔 곁들이게 되니 글 읽기와 쓰기가 쉽지 않군요. 책 한쪽 읽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있거든요. 앵두, 보리수, 개복숭아, 매실 등은 이미 거두어들였고, 이제 장마철에 접어들어 강제휴가를 얻은 셈이니 밀린 책 좀 붙들 수 있게 됐습니다.
6월엔 선물 받은 책도 많지 않았는데 그마저 다 읽지 못했습니다. 이명권 선생이 보내준 종교. 철학 관련 책만 좀 봤지요. 그는 국내외에서 종교학, 철학, 문학 분야에서 석사학위 셋과 박사학위 둘을 받은 공부 욕심 많은 학자인데, ‘종교 간 대화와 예술의 만남을 시도하는 영성공동체<코리안아쉬람>’ 대표로 유튜브를 통해 동양철학을 강의해오고 있습니다. 계간지≪산넘고 물건너≫를 펴내며 작년 말엔 제가 편집한≪종교와 평화≫를 출판한 <열린서원> 대표이기도 합니다.
1)이명권, <공자와 예수에게 길을 묻다. (열린서원, 2021)>
중국 길림사범대학에서 1년간 강의한 내용을 10여 년 전 펴냈다가 다시 출간한 책인데 노동하다 쉬며 틈틈이 읽었습니다. 공자와 예수 등 성인들의 말씀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터에, “공자 사상의 진면목이 담겨있는 ≪논어≫와 예수정신의 핵심이 기록된 ≪복음서≫와의 대화를 시도한 책”을 접했으니 두 경전을 요약해 공부한 셈이지요. 서문(프롤로그)에 실린 “역사가 인간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바로잡아주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면, 고전은 삶에 지친 인간에게 새로운 정신적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심장의 박동과도 같은 것”이라는 명문도 머리에 담았습니다.
2)김동석 외, <상호문화적 글로벌시대의 종교와 문화 (열린서원, 2022)>
이명권을 포함한 철학자. 신학자 8명이 한 주제씩 맡아 쓴 책입니다. ‘종교들이 인류 전체에 봉사해왔지만 이젠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는 것을 멈추어 그들의 과업이 끝나 버렸다’거나, ‘불교와 기독교는 퇴보의 위치에 있으며 세계에 대한 과거의 위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인상적이군요. 특히 ‘힌두이즘의 기원’을 재조명한 박수영의 글과 ‘한국 개신교회의 급격한 쇠퇴 현상’을 분석한 김동석의 글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글/ 이재봉 명예교수(원광대학교 평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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