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기 최초 4년제 대학 부속고등학교로, 교육계 신선한 변화 기대
재단 이사회, 제2의 성장을 위한 동국대학교재단 통합 결의
영석고, 동국대학부속고등학교로 새롭게 태어나
학교법인 영석학원 이사회(이사장/안채란)는 지난달 10일 오후2시, 영석고등학교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제2의 성장을 위한 동국대학재단 통합을 최종 확인하고, 영석학원을 동국대재단에 통합하기로 최종 결의했다. 이로서 2009년 11월 23일 동국대 법인(이사장/ 정련스님)과 맺은 동국재단과 영석재단 기부합병협정조인식이 1년 만에 법적으로 마무리 됐다.
이날 마지막 이사회를 주제한 안채란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제 나이 40대인 1970년 봄, 배고프고 공부하기 힘든 시대에 학교를 설립, 80대 중반이 될 때 까지 41년간 학교를 경영하면서 어려운 일, 기쁜 일, 안타까운 일이 많았다”고 소회를 밝히고 “이번 통합으로 동국대학교의 좋은 리더십이 영석고등학교를 북경기 제일의 명문 고등학교로 만들어 줄 것을 의심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감격적인 눈시울을 불켰다.
의정부 영석고등학교 설립자이며 이사장인 안채란(85세. 여)씨는 지난해 동국대법인에 의정부시 용현동 소재 학원부지(4만 천9백여㎡)와 영석빌딩 토지와 건물 등 1,000억원대 부동산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해 한국사학의 병폐 중에 하나인 세습의 고리를 끊고 한국사회에 새로운 가치변혁을 주도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안채란 이사장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의정부시 녹양동에서 출생했다. 한의학자인 아버지 덕택으로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일제가 내선일체를 앞세우며 조선을 압박하자 아버지는 집을 떠나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가세는 기울어졌다. 안 이사장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 창씨개명의 압력 속에서도 안채란이란 이름을 지키며, 애국하는 길을 꿈꿨다.
그는 1960년대 부동산업으로 재력을 쌓고 46세 때인 1970년, “백성이 배우지를 못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것”이라는 부친의 말씀에 따라 가난해 배우지 못하는 청소년을 위해 고향인 의정부 용현동에서 육영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영석고 운동장 자리에 천막을 치고 제가 직접 벽돌 틀에 벽돌을 찍어 학교 건물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 12명, 전교생 140명의 작은 학교여서 저도 국어, 역사 등의 과목을 맡아 학생들을 직접 가르쳤지요.” 그 후 ‘복지’라는 교명을 1988년 ‘영석’으로 바뀌었다.
영석이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아호에서 따왔다. 영석고는 현재 17개 학급에 학생 수 600여 명, 교직원 40여 명으로 현대식 건물을 갖춘 학교로 성장했다. 하지만 난방 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1970년대에 추위 때문에 학생들의 공부가 지장을 받을까봐 그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나와 구공탄으로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난로를 지펴놓을 정도로 학교와 학생에 대한 애착은 유별났다.
이처럼 자신의 ‘분신’ 같은 영석학원을 동국대에 기증키로 한 것은 모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행정대학원과 교육대학원에서 수학한 그는 12년 동안 동국대 총동창회 부회장을 지냈고 6년 동안은 학교법인 동국학원의 이사로 활동했다. 모교 후배를 위한 장학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안 이사장의 이름을 딴 ‘채란장학회’ 등을 통해 장학금을 받은 동국대 학생이 150여 명에 달한다.
안채란 이사장은 현재 당뇨 등 노환과 교통사고로 어깨뼈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지만 자신의 입장을 밝힐 때에는 청년과도 같은 눈빛을 솟아낸다. “갑작스런 결정 아닙니다”, “생애 마지막 결정을 동국대로 하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는 안 이사장을 보면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평소 지론을 지킨 그는 작은 거인이었다.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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