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의 미공개 양주문화기행(2) '웅주 거목 양주(楊州)'
양주관아지 입구 모습
김성수의 미공개 양주문화기행(2)
<웅주 거목 양주(楊州)>
경기도의 옛 지명은 ‘양광도’다. 이는 경기도에서 가장 큰 지역인 양주와 광주(현재 경기도 광주임)를 합한 이름이다. 이런 지명은 전라도가 전주+나주, 경상도가 경주+상주, 충청도가 충주+청주의 앞 글자를 합쳐 부르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양주를 땅이 넓고 산물(産物)이 많은 고을이라는 뜻에서 옹주거목(雄州巨牧)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정3품에 해당하는 목사(牧使)가 관활하던 큰 지역으로 예전부터 큰 도시였다는 것을 나타내던 이야기가 양주몽(楊州夢)이라는 전설로 전해오고 있다. 옛날 욕심 많은 네 사람이 각자의 소원을 이야기 했다. 첫째 사람은 학을 타고 날고 싶다고 말했고, 두 번째 사람은 돈 10만냥을 세 번째 사람은 양주목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네 번째 사람은 ‘금요전 십만량 기학상 양주’라고 했다. 허리에 십만냥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 땅에 내려 양주목사가 되고 싶다는 뜻으로 당시 모든 사람이 탐 낼 정도로 양주목사는 지방수령의 자리 중 으뜸으로 쳤다. 이 전설 때문인지는 몰라도 관아지에서 남방동으로 가는 길목에 ‘승학교’라는 다리가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목사 직책은 고려시대인 983년(성종2년), 지방제도 정비과정에서 당시 전국8도 주요 거점지역을 광주(廣州), 충주, 청주, 양주, 공주, 승주, 전주, 나주, 진주, 상주, 황주, 해주 등 12목으로 정하면서 그곳을 관할하는 최고위직 공무원을 목사라고 불렀다. 1018년(고려 현종 9년) 12목 중, 공주, 승주, 양주, 해주가 제외 되 고려시대 내내 양주목사는 거의 궐원된 채 부사(副使)만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경기4, 출청4, 경상3, 전라3 등 20여 목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양주목사는 정3품직의 고관이 임명되었다. 주요업무는 관할지역에 대한 농업장려, 호구(戶口)의 확보, 공부(貢賦)의 징수, 교육진흥, 군정의 수비, 사송(詞訟)의 처결 등이며, 조선 전기 진관체제(鎭管體制)가 시행 될 때에는 각 진관의 책임자인 첨절제사(僉節制使)의 군직을 겸하기도 해 막강한 파워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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