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부터) 류중열 연출, 강승원 배우, 최송림 희곡작가
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강승원 배우 <마구간> 등불
“강배우의 폭발적인 불꽃 연기가 눈에 확 떠오르며 연극 속의 합창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
연극 <마구간>의 주인공 강승원 배우(사진)와 류중열 연출, 그리고 작가인 필자를 포함해 셋이 오랜만에 만났다. 연일 가마솥 삼복더위가 열기를 내뿜는데 우리네 마구간의 초연(初演) 원조 삼총사, 아니 ‘삼모자’(사진, 배우를 중심으로 좌우 연출과 작가)가 동묘 풍물시장에서 뭉친 것이다. 그것도 대학로 탁주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외할머니 해장국’집은 마구간 공연 당시 연극의 거리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한 주막 분위기였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막걸리 한 병이 2천원이라니, 그야말로 가난한 연극인이나 서민들에겐 가성비 최고 엄지척의 천사(?) 같은 주인인 셈이다.
그야 어쨌든 <마구간>은 1992년에 막을 올려 6개월 넘게 장기 연장 공연한 화제작으로 지금도 대학로 연극인들 사이에선 심심찮게 회자되는 롱런 히트 무대였다고나 할까? 오늘날 연극현장은 한 달, 아니 보름, 열흘 공연도 어려운 형편인데도 말이다. 애당초 마구간은 연극연출협회에서 주최한 중견작가 단막극 공연에 참여했던 걸 장막으로 손질해 첫선을 보인 강배우의 폭발적인 연기를 간판삼아 류연출이 본격적으로 밀어붙여 자신 있게 선보인 게 성공한 것이다.
이야기는 의붓아버지 권과장에 의해 12년간 성폭행에 시달려온 미라 부녀를 주인공으로 그해 1월에 신문지면을 떠들썩하게 한 실화를 바탕으로 꾸며졌다. 그 당시 권과장 역의 강배우 연기를 본 관객들이나 연극인들은 몸이 찌릿 파르르 떨리는 전율을 느꼈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강배우는 그 후 다른 극단에서도 이 공연을 한 바 있는데, 그때 관객으로 만난 여선생님과 결혼까지 골인했다. 내가 쓴 결혼축하 글을 여배우가 결혼식에서 낭송극처럼 읽어주던 모습이 어젠 듯 눈에 선하다. 우리는 옛 생각에 젖어들며 탁배기 박치기로 <마구간>의 추억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그때의 연극인연으로 이후 몇 편 작품도 함께 한 이야기까지 안주삼아 나왔다. 우리 북경기신문 터줏대감 현성주 편집국장이 제작한 공연으로서 의정부를 조선개국 역사의 현장으로 조명해본 이방원과 정도전의 <난리굿>, 천안에서 막을 올린 <고향>의 작가 이기영 일대기 <버들피리> 등이 그것이다. <난리굿>은 북경기신문사 창간 때부터 큰 어른으로 참여한 전위 예술가 무세중‧무나미 선생님 부부도 출연해 무대를 한층 풍성하게 빛내주었는데, 전북 정읍 지방 초청공연까지 함께했다.
어느덧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 다 된 듯싶은데, “모처럼 마구간 삼총사, 삼모자가 모였는데 술만 먹고 그냥 헤어질 순 없지요!” 강배우가 무언가 방점을 찍으며 강조하고 상징이라도 하듯 모자를 좀 더 깊숙이 눌러 쓰는 제스추어로 창의적인 눈을 반짝였다. 요컨대 이렇게 셋이 모인 것만으로도 뭔가 생산적인 일의 출발을 의미하지 않느냐는 암시가 엿보인다. 그렇다, 다시 한 번 마구간에 등불을 밝혀보겠다는 연기자로서의 그 열정이 뜨겁게 전해지는 순간이다.
아, 마구간의 원조 3인방이 찜통 더위에 마음먹고 한데 모인 것만으로도 이미 공연에의 싸이렌은 울린 셈이 아닐까? 그것도 언제부턴가 앙코르 무대를 내심 꿈꾸던 참인데,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이기도 한 강배우가 마침내 총대를 메고 마구간의 불꽃을 한번쯤 더 되살릴 군불을 지펴보는 삼모자다. 어느덧 술이 적당하게 오른 우리는 삼십여 년 전 마구간 초연 때로 돌아간 듯 마지막 탁배기 박치기를 마감하며 다시금 손을 불끈 잡는 모양새다. 이게 바로 아름다운 대학로 연극인의 우정과 연극 사랑이 아닐까 싶다.
아무쪼록 연말이나 내년 초쯤 머잖아 마구간 강배우와 관객들이 대학로 소극장에서 또다시 만나리라 본다. 벌써부터 마구간에 등불을 밝히는 강배우의 폭발적인 불꽃 연기가 눈에 확 떠오르며 연극 속의 합창 소리가 막 우렁차게 들려오는 환청과 그림에 젖어든다.
♪“이 세상이 거대한 짐승의 우리라면~ 마구간에 등불 밝혀~”
글/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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