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이루는 곳-동두내, 우리의 고향
동두내는 동(東)쪽을 머리(頭)로 하여 서쪽을 흘러내리는 냇물(川)이름이다. 이 동두내는 포천쪽에 있는 왕방산에서 발원되어 바위와 풀섶에 부딪치며 20여리나 흐르는 무척이나 맑은 냇물이다. 그나마 인총이 늘어난 탓으로 많이 오염이 되었지만, 서울에서 불과 백리밖에 안 되는 곳치고는 자연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이 동두내의 얘기를 하는 것은 냇물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 고장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실은 동두내는 현재의 동두천(東豆川)의 옛 이름이다. 동쪽에서 흘러내린 냇물 동두내가 동두천이란 지명으로 된 사연은 이렇다고 한다.
동두내가 흘러내려와 좀 더 큰 냇물(신천)과 합쳐지는 지점에 장터거리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자 이곳 지명이 동두내가 되고, 그것이 한자화 되는 과정에서 東頭川(동두천)으로 다시 東豆川(동두천)으로 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 동두내 장터가 시골이 한 소읍으로 변하는 데는 기찻길과 한길이 생기고 이곳에 기차역이 생긴 것이 큰 요인이 되기도 했을 터다.
그래도 동두내 장터는 6.25사변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지나가는 경원선 열차가 서며, 5일에 한 번 장이 서는 전형적인 시골의 장터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러 했듯 6,25는 동두천에 어느 고장보다도 큰 변화를 불러왔던 것이다. 삼팔선이 10여리 떨어진 이곳에는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몰려 왔던 북한 탈출인들이 모여들기도 했지만, 전쟁중에는 서울을 지키려는 아군과 서울을 뺏으려는 적군과의 사이에 전개된 치열한 전투의 통로가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유엔군 장병들이 지나가기도 했다.
이런 사연 때문에 지금도 동두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연상되는 것은 주로 <전방>아니 <미군부대>니 하는 등의 좀 멀게만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보면 그렇게 먼 곳이 아니다.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는 양평보다, 서쪽으로는 강화보다 가깝고, 남으로는 기흥이나 곤지암, 북으로는 포천보다 가까운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 때문에 이들 다른 지역보다 개발이 덜 됐다.
인구도 지난 30여 년간 큰 변화없이 10만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환경이 그나마 보전돼 있다. 요석공주와의 연(緣)을 끊고 수도(修道)에 정진하느라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소요산에 전해 오는 얘기는 오염이 안 된 그 주변 환경을 닮았다.
본래 동두천은 행정구역으로 <양주군 이담면 동두천리>였다. 이담(伊淡)이란 말은 물이름 이(伊:중국 하남성에 伊江이 있음)자와 맑을 담(淡)이 모여 된 지명이다. 그런 <이담>이란 말은 <동두천>이란 말에 밀려 이곳에 사는 주민들조차 잊어버린 이름이 되어 가고 있다.
이렇듯 동두천은 <양주시>또는 <이담시>라고 불려지는 것이 순리일 듯, 군(郡)이나 면(面)의 이름이 아닌 한 개 리(里)의 이름을 시명으로 하는 것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담은 맑은 물을 의미한다. 그런 탓인지 600여 년 전에도 이 태조가 지나는 길에 물을 마셨다 하여 <어수물(御水)>이란 지명이 있다. 지금도 동두천시 수돗물의 상수원은 강원도 북부 산간지대를 주된 발원지로 하여 흘러내린 한탄강 상류이다. 전국의 여러 시(市) 가운데 제주시와 함께 가장 덜 오염된 물을 상수도원으로 갖고 있는 셈이 된다.(중략)
이곳은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세가 없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두천은 앞서가는 곳이며 모든 사람의 고향이 될 수 있는 곳이다. 필자도 <어수물>에 가까운<능안>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어느 지역으로부터 온 사람이건 모두 필자의 이웃이요 친구이다
고향이란 우리가 역사를 이루는 곳이다. 그것은 나나 나의 부모의 본적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다 함께 우리의 고향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100년 전부터 이곳에 와서 살건, 50년 전 또는 10년 전에 이곳에 와서 살건 이곳이 모두의 사는 곳이며 고향이기엔 마찬가지다.
10년이건 100년이건 그것은 시간의차이일 뿐, 수만 년 아니 수 억년의 긴 인류 역사에 비하면 수유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우리 모두의 근본 고향을 말하기로 하면 중앙아시아 어디가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동두천은 동과 서가, 남과 북이, 도시와 농촌이, 전방과 후방이,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 만나는 프론티어이다. 지구 최초의 새로운 생명이 물과 바다가 만나는 바닷가에서 시작했듯이 프론티어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동두천이란 프론티어는 우리에게 많은 희망을 준다. 고속도로와 전철이 개설되면 서울에서 30분 내지 한 시간 밖에 안 걸리는 곳, 그러면서도 물과 공기가 맑은 곳, 전국에서 모여든 모든 이들에게 고향이 되는 곳, 그리고 남과 북을 연결하는 통일의 길목이다. 이곳은 분명 새로운 세기(世紀)의 새로운 세계(世界)로 나가는 길목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이루는 우리의 고향이다.
글/ 이경원 경기북부미래포럼대표 (본 글은 이경원 교수가 2003년에 지은 ‘이 강을 건너야 한다’에서 발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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