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사임을 보며-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이후부터 지속되어온 논쟁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과 사회 또는 개인과 국가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람들 간의 문제의 문제에 관한 논쟁이다. 공자와 맹자는 당시의 어지러운 사회를 묵도하면서 인의정치와 왕도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아쉽게도 당시의 어떤 왕도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대에 들어와 공맹의 철학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경우,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해온 통치이데올로기 이기도 하였다. 공자 철학의 출발점은 하늘로부터 사람에게 주어진 착한 마음이 있는데, 이를 잘 발휘하여 양육 발전시켜 자신을 수신 수양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
이를 바탕으로 공자는 가족을 잘 돌보고 더 나아가 국가와 세상을 잘 발전시켜야 함을 말하였다. 맹자는 사람은 모름지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사양할 줄 아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수신(修身),수양(修養)을 통해 이러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군자(君子)요, 성인이라고 본 것이다. 군자는 가정을 이루어 어진 마음으로 자식을 대하고 또 자식들은 효로서 부모를 대하고, 형제들 사이에는 우애로 지내고 하는 등의 규칙을 만들었다.
자기수양, 가정 돌보기, 나라살림, 그리고 국제적인 일 등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봉건사회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맹자 당시에 이미 공자와 맹자의 이러한 철학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다. 그 비판의 핵심에는 묵자(墨子)라는 철학자가 있다.
묵자에 따르면 맹자의 가족주의 철학은 잘못하면 가족이기주의로 전략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 나의 아들과 남의 아들, 나의 딸과 남의 딸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을 결국 종족주의에 근거한 가족 이기주의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묵자의 겸애설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묵자의 비판에 응수하여, 묵자의 입장은 거의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상일 뿐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다 사랑하는 입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공자와 맹자의 철학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사람들은 수양과 가족 돌보기의 삶을 삶의 우선적인 가치로 채택하였다. 하지만 묵자가 우려했던 것들이 현실로 드러났다. 가족이기주의와 이 이기주의가 확대 재생산된 형태인 집단이기주의가 이른바 한국어의 ‘벌’이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한 것이다. 학벌, 군벌,재벌,족벌을 비롯하여 무수히 다향한 소규모 이익집단을 만들어 자신의 ‘가족’데 들어온 사람을 감싸고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은 최근에 너무나 잘 알려진 말이기도 하다.
봉건주의를 지탱해주던 가족주의 철학이 중상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산업사회에도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법인이 생기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라고 하는 공적인 영역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땅의 우연과 학교의 우연에 집착하여 가족주의로 둥지를 틀고 살고 있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사익이 공익에 우선하는 봉건주의적 이데올로기로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공정한 사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배의 공정이라는 의미에서의 ‘공정한 사회’인지 기회 균등의 의미에서의 ‘공정한 사회’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경제사범이나 양심수나 상관없이)은 법 앞에 공정하다는 의미에서의 ‘공정한 사회’인지 기회 균등의 의미에서의 ‘공정한 사회’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공정하다는 의미에서의 ‘공정한 사회’인지 잘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먼저 생가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의식 수준이 아직 이러한 ‘공정한 사회’로 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구별되지 않거나 사적인 영역이 공적인 영역에 우선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공정한 사회’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전히 농경사회와 씨족사회의 이념을 가지고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공정’혹은 ‘정의’는 우연히 자기편에 들어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인 강자(가족)의 이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교부 장관의 사건을 보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나도 나의 사위들과 며느리를 나의 아들과 딸처럼 사랑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글/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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