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이라는 말은 본래(本來 )지점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어떤 일이 진행되기 이전의 시작점(始作點)을 뜻한다. 사람들은 종종 원점에서다시 생각해보자고 하던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자주 한다. 어떤 일이 지작되어 많이 진행된 후, 뭔가 시작할 때의 의도와 부합하지 않거나 현재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 흔희 사람들은 과거의 원점으로 돌아가 잘못된 일을 바로 잡아 보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의 철학자들은 요순임금의 시대를 원점으로 생각하고, 이에서 벗어난 것을 잘못이라고 판단하여, 자신들의 살던 당시의 시대를 비판한 바 있다. 그 대안은 다를지라도 중국철학자들이 모범으로 삼는 것은 모두 요순 임금의 치리였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 운동도 엄밀하게 말하면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고, 마친 루터의 종교 개혁도 성서에서 말하는 원점인 신앙만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역사에서 재상 혹은 부활을 의미하는 르네상스 운동도 귀감으로 삼아야 할 원점인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에서 나온 것이다. 칼 맑스의 공산주의 이론도 따지고 보면 원시공산사회로 돌아가자는 이론인 것이다. 인도인들은 원점을 숫자 0에서 발견하고자 하였다. 인도인들의 발명인 숫자 0은 모든 숫자의 시작점이다. 이 시작점이 ‘없다’라는 의미를 가진 0이다. 인도인들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이를 의미하는 단어가 바로 공이다.
문화마다 원점을 설정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그 구조에 있어서는 유사성이 발견된다. 어떤 일이 잘못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문제를 다시 보자는 지혜의 산물이 바로 원점이 아닐까 한다. 사람마다 스스로 설정하는 원점이 다를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자신들이 처음 만나 열렬히 사랑했던 시점이었을 수도 있고,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던 고향의 나늑함이 돌아가고 싶은 원점일 수 있지만, 원점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줄 수 있는 도약대 역할을 한다. 성서에도 보면 아버지 곁을 떠난 탕자가 다시 아버지 곁에 있던 때를 떠 올리며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탕자는 이 원점으로 돌아섬으로써 비로소 더 이상 노예 생활이 아니라, 자유와 안식을 얻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탕자처럼 자신이 본래 신(神)의 자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망각한 사실을 깨닫고 믿음을 통해 신의 자녀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참된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어떤 심리학자는 인생에서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한 번 종이를 꺼내놓고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모두 적어보라고 권한다. 한가지 씩 적어 내려가다보면 실상은 자신이 가진 것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서서히 행복감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순수했던 마음을 되찬고 , 이를 거울삼아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삶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 우리는 자꾸 앞으로 달려가려고만 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시골길을 걷다가 건너가기 힘든 징검다리나 개울물을 만났을 때 우리는 뒤로 물러섰다가 가속도를 이용해 앞으로 힘차게 건너간다. 그냥 그 자리에서 건너뛰면 힘들지만, 뒤로 물러갔다가 뛰면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원점을 생각해보자 부자가 되었어도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한 번 부자가 되기 위전의 상황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을은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하는 절기라고 한다. 생명의 원점, 지금 나의 존재의 원점, 모든 열매들의 원점, 자연과 우주의 원점에 대해서 생각하는 절기라고 생각한다 원점으로 돌아가 더 풍성해지고 행복해지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기원(논설위원, 경기도의료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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