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이 만난 사람
“대학로 ‘눈바래기’ 수승대 산바람”
거창국제연극제 이종일 집행위원장
대학로예술극장3관에서 <눈바래기>를 연출한 거창국제연극제 이종일(사진 오른쪽)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경남 거창 지리산자락인 수승대를 주 무대로 국제연극제를 신화처럼 활짝 꽃피운 주인공인데, 해마다 여름 한철 산골소도시 거창은 온통 연극축제에 빠져 피서가 따로 없단다.
“1983년 소수단체의 참여로 처음 시작한 조그만 실내 국제연극제가 1993년 거창국제연극제(KIFT)로 성장, 올해 24회를 맞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문화예술축제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하며 발돋움했다고 자부합니다.” 매년 수십만 명 이상이 찾아 연극, 무용, 퍼포먼스, 마임, 민속음악 등 각종 공연을 관람하는데, 시골마을에서 국제연극제를 하는 것 자체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원래 부산 출신인 그는 거창 소재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아름다운 인연의 뿌리를 내렸는데, 차츰 연극제의 규모가 커지자 아예 교직을 그만 둔지 오래다. 어느덧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에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눈빛조차 카리스마로 똘똘 뭉쳐 원칙에서 벗어나면 언제라도 폭발할 듯 그윽하게 번뜩였다.
관객입장에서 연극을 본 소감이랍시고 ‘조미료를 뺀 산사음식처럼 맛깔스럽다고 할까, 도시적 테크닉보다는 순애보 스타일의 촌놈적 무공해 순박한 연극’이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우리나라 연극의 메카라는 대학로 현장에 대해 날카로운 진단을 쏟았다. “정체불명의 번역극이 판을 치다보니 말초적인 상업성에 매몰되어 연극인도 관객도 도대체가 혼란스럽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정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통극의 르네상스 고지를 탈환해 깃발을 꽂기 위해서라도 대학로에 ‘베이스캠프’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은 벌써 ‘목성(木星)’이라는 소극장 이름을 지어놨을 정도로 하루아침에 불쑥 생각해낸 아이디어 차원의 계획이 아닌 것 같다. 그만큼 하나씩 차근차근 청사진을 준비해온 소극장 개관도 멀지 않을 듯싶다. 연극문화예술축제의 여러 기능 중 국내외 초청연극과 경연은 기본이고 희곡공모, 잡지, 세미나, 청소년캠프 등등이 있는데, 지역 공간적인 프레임을 머잖아 서울까지 넓힐 모양이다.
그 구체적인 첫 사업으로 이번 봄에 연극전문지 <극작에서 공연까지>를 인수하여 <연극세계>라고 간판을 바꿔달아 복간한다. “우리 연극계의 보물 같던 극공이 경영난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고심 끝에 십자가를 한번 져보기로 했달까요? 하하하…” 파안대소하는 얼굴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수년간 재정적 출혈을 감수하며 연극잡지를 고집스럽게 출간, 뚝심으로 버티던 작은 거인 김길형 전 발행인의 ‘가치관’을 이연출 같은 새 주인이라면 충분히 살려내리라 믿는다.
“아무쪼록 두고 보십시오. 제 나이 어느덧 60평생, 그간 연극인생에서 가꿔온 노하우와 꿈의 지평을 살짝 펼쳐볼 참입니다. 전통과 연속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주간이셨던 극작가 김영무 선생님을 새로 거듭나는 잡지의 편집책임자로 그대로 모십니다. 최 작가도 많이 도와주세요.” 삼동설한에 대학로 한복판으로 눈바래기라는 수승대 산바람을 싣고 게릴라처럼 기습, 지난 14일까지 한 달 가량 무대를 기획·제작한 향토극단 ‘입체’ 조매정 대표는 그의 부인이다. 부부가 한맘으로 손잡고 비상하는 흑룡의 등을 탄 듯 거침없이 내딛는 역동적 행보는 미상불 회갑맞이 과실을 수확하는 기쁨과 풍성한 포부가 어우러져 더욱 빛났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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