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족 나들이 명당
‘만년토록 빛나는 큰 복을 지닌 궁궐’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일의 궁궐이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경복궁은 북악산 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목멱산에 둘러싸여 있고 그 중심에 청계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 잡았다. 입지를 고를 때에는 좋은 땅은 좋은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생각에 매우 신중했으며, 전각들은 최고의 권위자인 왕이 머무는 공간인 만큼 나라에서 으뜸가는 규모와 기술로 지어졌다.
왕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돌보고 왕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궁궐에는 필요한 전각이 많았다.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과 이들이 이루어내는 공간은 창건 당시부터 매우 짜임새 있게 계획되었다. 궁궐의 주요 문과 전각인 광화문 정문과 근정전(정전), 사정전(편전), 강녕전(침전)은 남북을 축으로 하는 일직선상에 놓였고, 이들 주요 전각에 딸린 부속 전각들은 각 영역 안에서 좌우 대칭을 이루도록 배치되었다. 둘레에는 네모반듯하게 궁성을 쌓았고 동서남북 네 방향에 문을 냈다.
경복궁 건축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엄중한 질서와 절제의 위엄은 예의와 도덕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자 한 조선 왕조의 기본 정신에서 비롯된다. 궁궐의 전각들이 각기 서열과 쓰임새에 걸맞은 규모와 모양새로 지어졌을 뿐 호사스럽거나 위압적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경복궁은 ‘만년토록 빛나는 큰 복을 지닌 궁궐’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여기에는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며, 대대손손 태평함을 이어가겠다는 조선 왕조의 강한 소망과 이상이 담겨 있다.
경복궁이 가장 활기찼던 시절은 세종 때이다. 세종은 집현전을 중심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각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며 우수한 인재들을 길러냈고, 백성의 생활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기술을 개발하고 제도를 고쳐나갔다. 특히 세종은 세계에서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을 발명해 냈다.
한글에 대한 사용 해설서로 펴낸 <훈민정음>은 유테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종은 임진외란 후 273년 동안 빈터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330여동 7,700여 칸의 전각을 지었다. 현재 궁궐 곳곳에 깔린 잔디밭은 대부분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섰던 곳들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복원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속에 근래 강녕전, 교태전, 자선당, 비현각, 건청궁, 태원전, 흥례문, 영제교, 광화문 등 주요 전각과 문, 다리가 복원되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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