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주 편집국장이 만난 사람
군부대 담장에 김삿갓 일대기를 그린 담장모습
현성주 편집국장이 만난 사람
태마공원의 적지를 가리키는 정재진 회장
김삿갓 테마 공원은 양주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야
양주시 회암동 회암리는 김삿갓(난고 김병영)의 고향이다. 이곳에는 여기서 태어나 이 고장을 지키며 살아가는 지역 지킴이 정재진(56세)씨가 있다. 그는 2004년부터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를 창립하고 회장을 자청하며 현재까지 양주 회암리가 김삿갓의 고향임을 전국에 알리는 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특히 정 회장은 각종 행사장에 나타 날 때 김삿갓으로 분장하고 나타나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 시키며, 양주가 김삿갓의 고향임을 소개하는 열정을 보여 왔다. 본지는 지난해 6.2지방선거에 모당 시의원 공천 신청했다 낙마한 정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 했다.
-지난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다 잊었습니다. 작지 않은 제 경험이 양주 시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으나 제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김삿갓 기념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2003년 우연한 기회에 아내와 백령도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 심청이를 기리는 심청각보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도 의인화 시키고 관광자원화 하는데, 우리 동네에서 태어나 시선(詩仙)이라고 존경 받는 김삿갓은 당시 양주 어느 곳에 표시석 하나 없어 김삿갓을 알려야 하겠다고 시작한 것이 기념사업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김삿갓에 대해 한번 더 소개한다면?
“난고 김병연(1807-1863)선생은 조선 후기 시인으로 이름은 병연, 호는 난고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삿갓을 쓰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삿갓'이라고 불렀고, 김씨 성을 붙여 '김삿갓'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섯 살 때인 1821년 홍경래의 란이 일어나 집안은 풍지박산이 나고 강원도 영월로 쫒기는 신세가 됐습니다. 선생이 20세가 됐을 때 벼슬을 할 수 있었으나 더러운 벼슬길에 대한 욕망을 털어 버리고 57세 생을 마감 할 때 까지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상을 떠도는 자유인으로 살면서, 짙은 해학과 풍자를 담은 1천여 편의 시를 쓴 것으로 추정 되지만 현재는 456편이 전해지고 있는 시선입니다”
-그간 기억 남는 사업은?
“2004년에 지역어른과 뜻을 모아 창립한 일, 김삿갓이 자란 강원영월, 생을 마감한 전남화순 찾아 고증과 답사활동한 일, 2005년 김삿갓 표석 제막, 2007년 김삿갓 동네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군부대 철조망을 걷어내고 담장을 세워 벽에 김삿갓의 일대기 그려 이곳이 김삿갓의 동네임을 알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시작한 김삿갓 인물고증과 공원 조성 사업을 계획은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김삿갓을 양주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려면 양주가 김삿갓의 고향임을 알리는 사업은 계속되어야하고 동시에 생가 터를 고증 받아 인근 생태자연환경과 연관될 수 있도록 만들고 회암사지 와도 연계가능한 곳에 김삿갓 테마공원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자 합니다”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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