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
선물 주고받기, 이런 것에 대한 설렘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불순함도 없는 마음의 표시를 담으려 할수록 부담만 되레 커진다. 주고도 욕먹거나 흉잡힐까봐 전전긍긍하다보니 포장지만 더욱 근사해진다. 한 꾸러미 물질 앞에서 교환가치나 대가성이 전혀 없는 마음의 선물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우리 모두가 너무 뻔뻔한 세태에 물들어 있지 않나. 본시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 보상심리가 자리 잡고 있는 한 선물과 뇌물, 사실 이것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이 때, 혹시 선물 때문에 고민했던 경험이 한두 번쯤 있으시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함께 기억하실 터, 가난한 부부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대표적인 미담이 되었다. 월세 방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라 남편을 위한 변변한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마련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울고 있는 아내를 묘사하며 작가 오 헨리는 “인생이란 흐느낌과 훌쩍거림, 그리고 미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에서 훌쩍거릴 때가 가장 많다.”는 명언을 언급한다.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더라, 식의 이야기가 아닌 이 작가의 소설은 매번 쓸쓸한 반전의 결말을 제시하며 인생의 비의를 일깨워준다.
한푼 두푼 몇 달을 모았건만 사랑하는 남편에게 줄 선물 값이 모자라 흐느끼던 아내는 불현듯 거리로 나가 미용품점 간판을 발견하고 단숨에 뛰어 들어가 자신의 긴 머리채를 팔아버린다. “갈색 폭포수가 떨어져 내리듯 물결치고 반짝이며” 흘러내린다고 아름다움의 찬사를 받던 여인의 머리채는 시바의 여왕의 보석과도 맞먹을 만큼 자랑스러웠던 것. 기꺼이 자신의 그 애장품을 내던진 아내는 상점 거리를 헤매며 발품을 팔아 남편에게 최고로 어울릴만한 백금 시계줄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들 아시다시피, 남편 또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였던 자신의 금시계를 팔아서 아내가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보석장식 머리빗을 사가지고 들어왔으니. 여기까지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의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의 실망을 위로하는 아내의 센스도 한 번 상기해 보시기를. “제 머리카락은 무척이나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남편도 역시 이 귀가 막힌 상황을 현명하게 마무리한다.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당분간 치워둡시다. 지금 당장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것들이니.”
아무리 훌륭한 미풍양속일지라도 거기엔 어떤 비련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원래 성탄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은 마구간에서 나신 간난한 아기 예수를 위해서 동방박사들이 물품을 받쳤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후세에 와서 한편으로는 상업적으로 변질된 크리스마스 선물. 이것 때문에 쪼잔해지거나 허랑해지는 심사가 든다면 달랑 남은 지폐 한 장 같은 12월 달력장, 그런 ‘마지막 잎새’의 스토리를 다시 한 번 들어보시기를.
오 헨리의 걸작 <마지막 잎새>는 <크리스마스 선물>과 더불어 연말연시마다 사이좋은 쌍둥이 형제처럼 떠오르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또 하나의 소설이다. 가난한 예술인 마을에서 방 한 칸에 세들어 살던 화가 지망생 처녀가 있다. 그 당시엔 무서운 돌림병이던 폐렴에 걸려서 심신이 쇠약해진 그 아가씨는 창밖의 담쟁이덩굴 낙엽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며 비관에 빠진다.
그러자 이웃의 노인 화가가 똑같은 잎사귀 하나를 그려서 붙여줌으로써 죽어가던 처녀가 희망을 얻어 소생한다는 이야기. 대부분의 독자들은 여기까지만 기억하실 터, 이 소설의 반전은 폐렴을 같이 앓던 노화가의 희생적인 죽음에 있다. 마지막 잎새가 사나운 비바람에 떨어지던 밤에 이웃집 아가씨를 위해서 그린 그림, 그 마지막 잎새를 붙이던 노인 환자는 정작 쓰러져 죽고 말았으니. 이 ‘마지막 잎새’야말로 늘 걸작을 그리겠다고 큰소리 치며 거드름을 피우던 노인 화가의 최고의 걸작인 것을.
"아니, 그래 말라비틀어진 담쟁이덩굴에서 잎사귀가 떨어진다고 저도 따라 죽는다는 그런 얼간이가 이 세상에 어디 있담? 내 참, 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 소릴세." 지금도 괄괄한 그 노인 화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지 않는가. 그리고 금시계를 팔아버린 가난한 남편의 호쾌한 목소리도 또 이렇게 들려온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건 치워버리고 자, 어서 고기토막이나 올려놓읍시다. 아, 불판 갈아야 되지 않나?
글/ 항영경 교수(신흥대학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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