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진정한 삶의 달인
진정한 삶의 달인
해마다 의정부 도서관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하여 시민들에게 보급한다. 올해는 필자도 그 선정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아시다시피 김병만의『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가 채택되었다. 직업상 책을 많이 대하다보니 웬만한 책에는 끄떡도 않는 ‘눈 높은’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뽑은 책이다. 필자 역시 최종으로 넘어 온 다섯 권 중에서 이 책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뒷 담화를 살짝 공개하자면 그 다섯 권의 책들이 모두 의정부 시민들이 직접 투표하여 올라온 것인데 그중에서 단 한 권을 뽑는다는 게 참으로 애석하고도 난감하다는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선정 작업이 진행되었다. 처음엔 사실 연예인이 쓴 책? 하며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제목에서부터 거북이, 꿈 등 너무 익숙한 이미지가 드러나지 않는가. 그런데 가감 없이 드러나는 맨 살의 삶의 이야기에 슬슬 빠져들고 말았다. 미려하고 세련된 수사법 하나 없는 김병만식 문장도 한 몫을 했다. 이토록 무모하고 어이없는 도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실소를 자아내는 대목도 있었다. 방송국 개그맨 시험에 일곱 번이나 떨어지고 방송관련 전공과목이 있는 대학시험에 열 번 이상 떨어진 저자는 이미 낙방의 달인이었다.
“넌 안 돼.” “너처럼 운 없는 놈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다.” 타인의 충고가 절망적일수록 오히려 격려의 힘을 얻는 독특한 의식 구조를 지닌 사람도 더러는 있는가 보다. “형 나랑 내기 할까? 나 성공 못 할 것 같아? 아냐, 나 돼, 나 될 거야. 개그맨으로 성공 못 하면 나…” 제발 그만 포기하라는 주위의 만류에 저자가 진짜 칼을 놓고 쐬기를 박는 장면에는 블랙코미디 같은 비장함이 서려있다. 이 개그 같은 현실이라니!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다잡지 않으면 “내가 나를 버릴 것 같다”는 저자의 결기가 아프게 묻어난다. 몸이 망가지고 부서져도 도전정신만은 시퍼렇게 불꽃이 튀는 김병만의 이야기가 자신의 찌질함을 무능으로 오인하며 미리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더없는 자극이 될 것이다.
맨 땅에 헤딩하며 일궈낸 성공담은 흔하다. 이 책도 그런 종류의 하나일 수도 있다. 저자는 스스로를 거북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이 책의 어디에도 거북이의 느림의 미학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오히려 세속의 비루함을 꿈의 투지로 뛰어넘는 상승의 미학은 충분하다. 저자가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나를 왜 이렇게 가난하게 만들었냐고 울면서 악다구니할 때, 불어터진 라면을 먹다가 통곡할 때,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은 통렬함을 느낀다. 미안하다는 어머니의 대답에 저자는 그만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은 죄인이 된다. 이 역시 우리들도 이미 저질렀던 집단적인 죄의식이 아닌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세상의 호의마저 인색할 때 원망과 절망이 겹겹이 쌓이기 마련이다.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그럴만한 촌음의 시간도 사치였다. 하여, 열패에 굴하지 않고 진검승부의 나날만을 충만히 살아가는 실존의 문제가 묵직하고 서늘하게 독자의 가슴을 짓누를 수도 있다. 이는 바로 감동이라는 또 다른 울림의 파장으로 전이된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벼랑 끝에 섰을 때 우리에게 과연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패배의 쓴 담즙을 머금은 사자(死者)의 얼굴로 샛길을 더듬어 허둥허둥 내려오거나, 거추장스런 날개를 떼어버리듯 육신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극단적인 방법 말고는. 차라리 허공의 너른 품으로 뛰어내리고픈 유혹에 흔들릴 때 김병만 그는 외줄을 탔다. 고통을 뛰어넘는 진정한 인생의 달인…
맨 몸으로 바닥을 기는 너덜너덜한 삶의 이야기, 이것은 성공의 신화도 전설도 아닌 팩트(pact)일 뿐이다. 그렇다, 끝내 별을 손에 쥐는 사람들은 늘 그런 처절한 현실의 팩트 속에서 태어난다. 개그맨들이나 그 지망생들, 그들은 모두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달인들이다. 웃음으로 보여주는 저자의 경건한 삶의 자세 앞에서 그냥 숙연해지고 말았다. 욕망을 위한 욕망에 눈이 멀어 온갖 편법과 악법에 편승하는 자기기만의 달인들, 욕망이라는 불의 전차를 타고 질주하다가 튕겨나가는 자폭의 달인들도 이미 동서고금에서 비일비재했던 터. 우리는 물론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의 저자가 이룩한 진정한 삶의 달인의 세계를 경원하며 또한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글/ 황영경 교수(신흥대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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