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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플러스
한반도 영세중립 통일을 위한 모색 ‘중립이냐 동맹이냐’(상)
본고는 지난 3월 8일, 부산광역시의회 중회의실에서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부산시의회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가 공동주최한 ‘한반도 영세중립화통일을 위한 모색’ 강연에서 이재봉 교수가 발제한 내용을 발췌, 상, 하로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1. 중립의 의미와 조건
‘중립(中立)’이란 말 그대로 ‘가운데 선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외교. 군사와 관련해서는,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전쟁 당사국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중간에 서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 때만 중간에 서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다른 나라와 군사적 도움을 주고받지 않으며 영원히 가운데 자리를 지키는 게 ‘영세(永世)중립’ 또는 ‘영구(永久)중립’이다. 국어사전을 빌리자면 “나라가 전쟁이나 군사 동맹에 관여하지 아니함으로써 국제법상 독립 유지와 영토 보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대표적 국가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꼽을 수 있다.
중립의 기본 조건은 어느 나라에도 군사기지나 군사 물자를 제공하지 않고, 어떤 국가와도 군사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비군사적 분야에서 다른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은 중립에 어긋나지 않는다. 물론 중립을 지키기 위해 자체 군사력을 갖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아니다. 침공 아닌 방어를 위한 군사력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기에 무장 중립도 있고 비무장 중립도 있다. 중립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 오해가 있는 듯하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패권경쟁 사이에 낀 한국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 무역통상을 확대하는 것을 일종의 중립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과의 교역을 확대하든 축소하든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며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중립이 전혀 아니다.
2. 중립화 사례와 역사
1) 해외 중립국과 중립주의
세계 최초의 중립 국가는 스위스다. 1815년부터 무장 영세중립을 유지하며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있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19세기에 영세중립국이 되었지만 20세기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침공당하며 무너져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패전국 오스트리아가 1955년 영세중립을 선언했다. 동남아의 라오스는 1962년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의 제네바회의를 통해 영세중립국이 추진 되었지만 국내 합의 실패로 이루지 못했다. 중남미의 코스타리카는 1948년 독립 이후 1949년 평화헌법을 채택하고 군대를 해산해 국방비를 사회복지비로 돌리며 1983년 비무장 영세중립을 선언했다.
미국은 1776년 건국 초기부터 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영토를 확장하며 대륙 밖에서는 유럽과 식민지 경쟁을 벌이지 않는 고립주의 대외정책을 펼치다,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중립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1941년 일본의 침공을 받고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2021년 현재까지 세계 제1의 전쟁 국가가 되었다.
2) 조선의 중립화 꿈
조선은 19세기 말부터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중립화가 제기되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1880년대 조선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자 일본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의 중립화를 제안했는데 중국이 거부했다. 1900년대엔 일본의 영향력 확대에 러시아가 조선의 중립화를 제안했지만 조선을 통해 러시아를 치려던 일본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고종 정부도 1900년부터 중립화를 추구했다. 1904년 조선이 중립국이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이 무시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을 일으킨 뒤 조선의 외교권과 군사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만들면서 조선의 중립은 약소국의 몸부림과 환상으로 끝났다.
3) 남한의 중립화 구상과 북한의 중립화 정책
남한 중립화는 미군정시대부터 미국군부나 정부에 의해 몇 차례 제기되었다. 첫째 미국과 소련이 1945년 한반도를 분단하고 점령한 상황에서, 1947년 미국군부는 만약 미국군대와 소련군대가 철수하면 한반도 영세중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트루먼 행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둘째 1953년 휴전협정을 앞두고 미국 국무부가 한반도 중립화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만들어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했다. 미국군부는 한반도 중립화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셋째 1960년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외교위원장에게 미국은 한반도 통일 문제를 오스트리아식 중립화로 해결하자고 제안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채택되지 않았다. 넷째 1976년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며 관련 부처에 한반도 중립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군부가 주한미군 철수 자체를 거세게 반대했다.
남한에서는 1960년 4월 혁명 직후부터 혁신정당과 사회단체, 언론인과 문인들이 한반도 중립화 통일을 내세우며 활발하게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며 1970년대까지 중립화 운동을 포함한 모든 통일운동을 억압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인으로는 김대중이 중립화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적극적이었다. 1971년 신민당 대통령후보가 되어 주변 4대 강국이 보장하는 통일 한반도의 중립화 구상을 밝혔고, 1989년엔 한반도가 통일되면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국으로 가게되리라 전망했다. 1999년엔 <한반도 중립화 연구소>와<영세중립 통일협의회>가 출범해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쳐왔다. 2020년엔 <한반도중립화를 추진하는사람들>이란 시민운동단체가 들어서 2021년 3월 1일 ‘한반도 영세중립화 선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했다.
북한은 당과 정부 차원에서 중립화에 매우 적극적이다. 1980년부터 이른바 연방제통일 방안인‘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에 중립국가로의 통일을 강조해왔다. “어떠한 정치 군사적 동맹이나 불럭에도 가담하지 않는 중립국가” 또는 “어느 대국에도 기울지 않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중립적인 통일국가”가 되는 것이 필연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3. 남한 중립화의 필요성과 군사동맹의 폐해
우리가 영세중립을 이루어야 할 이유는 부질없이 끔찍한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다. 남한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공에 의한 전쟁보다 미국과의 군사 동맹에 따른 전쟁의 가능성이 크다. 이미 두 번이나 참전했다. 1960년대에 베트남 독립을 방해하고 통일을 반대하며 일으킨 미국의 침략전쟁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크게 도왔다. 2000년대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거세게 반대하고 비난했던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도 뛰어들었다. 미국처럼 전쟁을 많이 해본 나라도 없고, 좋아하는 나라도 없으며, 잘하는 나라도 없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웠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초강대국이 되었고, 세계패권을 유지해왔다. 1776년 독립선언 이후 2020년까지 244년 가운데 무려 220년 이상 전쟁을 치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살펴보면 세계 각지에 약 1,000곳의 군사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 지역에서 200개 넘는 전쟁에 개입해 왔다. 이토록 호전적인 국가와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면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남한이 영세중립을 이루려면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고 한미 군사 동맹을 폐기해야 한다. 중립의 기본 조건이 “어느 나라에도 군사기지나 군사물자를 제공하지 않고, 어떤 국가와도 군사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역할과 필요성 그리고 득실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남한의 안보이익에 기여 하는가, 미국의 안보이익에 기여 하는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가, 불안을 야기 하는가?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 미국 때문에 남한이 전쟁을 피하는가, 전쟁에 휘말리는가? 등이다.
주한미군은 본디 1953년 7월 정전협정 직후 맺어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잠시 쉬기로 한 상태에서 전쟁이 재개될 것에 대비해 미군이 머물러있기로 한 것이다. 냉전시대 미국의 반공정책으로 소련의 팽창과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하고 봉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북한보다 크게 뒤떨어진 남한에 더 절실했다. 다음호 계속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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