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주 기자수첩 , “아! 홍콩이여.......”
현성주 기자수첩 / “아! 홍콩이여.......”
지금 세계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홍콩시위는 이런 광경을 많이 접해 본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고 있다. 먼저 홍콩에 대해 알아보자. 홍콩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그 기원이 올라간다. 이 지역은 진시황제 시절에 첫 번째로 병합되었으며, 당나라와 송나라 당시 무역항과 해군 기지로써 활용되었다.
1839년에 청(淸)왕조의 승인으로 이루어진 아편 수입 금지안은 중국과 영국과의 제1차 아편 전쟁을 낳았다. 홍콩 섬은 1841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난징조약으로 중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양도되었다. 이듬해에 영국은 빅토리아 시티의 건립과 함께 총독부를 신설하였다. 1860년 중국의 제2차 아편 전쟁의 패배 이후 영속적으로 영국에 귀속되었다. 어쨌든 19세기의 홍콩은 영국의 주요 무역항이었다.
홍콩은 영국의 물산 집산지로써 활용되는 자유무역항으로 선언되었고 구룡반도와 광동간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또한 영국식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1870년대-1880년대 이후 홍콩은 아시아의 영국령 중에서 가장 빅토리아 문화가 개화된 지역이 되었다. 이처럼 홍콩은 영국의 민주주의 영향을 1백년 동안 경험했으며 그렇게 생활해왔다.
1997년 중국은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으면서 두 나라는 영국의 통치하에 있어서 자본주의 사회로 지내왔던 홍콩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에 홍콩반환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은 이른바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안에 두개의 체제)"라는 약속을 하면서 향후 50여 년 동안은 홍콩의 자본주의 사상을 인정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정부는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으며, 홍콩내의 반중국 인사에 대한 탄압도 심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얼마 전 대만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홍콩으로 도주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홍콩과 대만은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관계로 이 사람을 체포해서 대만으로 압송할 방법이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홍콩자치정부는 대만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하려고 법안을 발의하였으나, 이 법안이 발효될 경우, 오히려 중국정부에 의해 악용되어 홍콩 내 반중국인사들을 합법적으로 중국대륙으로 압송하여 탄압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 홍콩시민들이 이 법안을 반대하면서 시위가 발생한 것이다. 홍콩인구는 700만 명정도인 데 이번 시위에는 200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으니 엄청난 열기를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정치적 배경도 그렇지만 또 다른 분야에서도 한 번 찾아보자.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70~80년대 홍콩영화의 매력을. 당시 홍콩영화는 참으로 대단했다. 주윤발, 성룡, 이소룡, 장국영, 등등 대단한 배우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1백년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를 경험했던 홍콩시민들은 십년의 공산주의를 받아드릴 수 없어 그들의 문화는 저렇게 소멸되었다. 지원도 안 해주면서 간섭만하는 중국 당국의 문화 정책을 도저히 받아드리고 따를 수 없었기에 저렇게 된 것이다.
“지원을 하되 간섭은 하지마라”라고 했던 어느 전직 대통령과 ‘블랙 리스터’ ‘화이트 리스트’를 만들어 문화의 모든 분야에 간섭을 꾀했던 어느 전직 대통령을 경험했던 우리에게는 지금 홍콩의 문화 정책이 타산지석으로 다가온다. 물론 우리에게는 절대 안 오겠지만 그래도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홍콩시민들은 70~80년대 우리가 그렇게도 찾고 싶었던 민주와 평화 독재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홍콩시민들의 절규와 몸부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위로와 큰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홍콩이여....”
글/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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