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훈 미공개'부산상회(釜山商會) - 양공주'
‘방영훈 미공개 소설’ 연재(37)
'부산상회(釜山商會) - 양공주'
역병에다 수해까지 겹치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아가씨들은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화투판을 벌이다간 다시 술판을 벌이고 그랬다간 싸움질로 하루를 보냈다. 비바람에 파도만 춤추는 것은 아니었다. 양철지붕이 쉴 새 없이 흔들렸고 빗물이 넘쳐 마당을 채우고도 마루턱까지 차올랐다. “언니야, 너무 걱정마라. 뱃놈들 지 꼴리면 또 찾아온다.” 민자에게 아가씨들의 위로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가씨 6명이 먹어치우는 쌀만 해도 한 달 전에 비해 배가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출항하는 배가 없어 횟감을 들고 올라오는 사람도 없고 수해로 채소 값도 금값이었다. “봐라 금자야, 여 소주 한 잔 부어봐라, 홧술이라도 마시야지 오간장이 다 타들어간다” “그래 비오는 날은 술이 최고제” 하태순이었다. 나무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며 그는 민자를 향해 한번 싱긋 웃더니 보자기를 끌러 술과 안주를 주섬주섬 내어놓는다. “우째 신수가 훤하오.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이기 뭔지 아나 미국 놈들 마시는 위스키라는기다. 자 한잔씩들 하자. 다 모이 봐라” “형부요. 이거, 남자 뭐같이 생긴 이건 뭐래요?” “소세지라는 기다. 한번 묵어봐라, 그라고 이 술은 물하고 마시는 술이다잉” 태순이 통조림을 열고 소세지를 꺼내놓자 아가씨들은 신기해한다.
“냉수하고요? 안주는요?” “술 묵어보면 와 물을 찾는지 알끼다. 미국사람들은 이거하고 또 요 치즈하고 비스켓이 안주다 이말이야” 금자가 성큼 위스키 한 잔을 넘겼다. “와이고, 와 이래 뜨겁노. 목에 불이 다 난다 아이가” “목젖이 달달 떨릴끼다. 그런데 맛은 희안하제?” 치즈에서 노린내가 난다고 싫어하던 아가씨들은 태순이 비스켓에다 치즈를 발라 먹여주니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태순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너거들, 좋은 술에 좋은 음식 먹고싶은 생각없나?”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초클릿을 꺼내 놓았다. “자 한 입씩 묵어봐라” “형부 뜸만 들이지 말고 본론부터 얘기해 봐라. 감질이 나서 못살겠다마” “여 와있는 미국아들도 몸은 풀고 살아야 안 되겼나 이말이다 내 말은!” “우리보고 코쟁이들 뒤치다꺼리하라 이 말잉교? 아이고, 그래는 못합니더. 그 아들 크기가 팔뚝만하다 카데예, 우리 다 찢어 죽일라캅니꺼?” “야가 와이래 쌌노! 니가 갸들 물건 보기나 했나?” “다 들은 풍월은 있지요. 그 자슥들은 저거들끼리도 빨고 핥고 뒤로도 쑤시고 지랄염병들 한다면시로요?” “허어 이 사람이 알지도 못하면서 와 이리 지랄이고. 모리면 가만있기라도 해야지. 서양아들은 전부 신사야 신사. 내가 지난 번 교육 받을 때 미군 부대 내에서 안 받았나! 너거들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 아나?” 하태순의 지론은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했다.
이곳 생활을 한 그녀들을 누가 데리고 살 것인가라는 말에서 출발, 그들은 직업에 귀천을 두지 않는데다 잘하면 결혼해서 미국 본토로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것 즉 사람대우를 해주는 것은 말 할 나위가 없고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배곯을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너거들 한테 기회를 줄라카는데 와 이리 말이 많노. 초량 유곽아가씨들은 지가 나가겠다고 줄섰다 줄 섰어 이 사람들아!” 금자부터 금새 풀이 팍 죽었다. “그런데 형부, 깜둥이들은 진짜 너무 커서 자궁까지 들어 온다 카더라 맞나?” “씰데없는 소리! 아무리 커도 여자는 남자 다 받아내게 되어있다." "형부요, 말이 안 통하잖아요“ 그제서야 태순은 한숨을 쉬는 척하며 “그래서 교육을 우선 받아야 한다 이 말 아이가. 즉 간단한 영어도 배우고 매너라는 것도 조금 배울 필요가 있다는 거거든.”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우리가 무슨 영어까지 한 대요?” “그거 간단하다. 한문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한글보다 더 간단하다. 단어 몇 개만 배우면 나머지는 다 잘 돌아간다 아이가”
민자의 역할이 정해졌다. 아가씨들은 이 시궁창에서 빠져나가는 일이라는 기대로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누였다. 머리를 감고 나자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민자는 비누의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큰 돈을 만질 것이라는 태순의 말을 몇 번이나 가슴 속에 되뇌었다.
<자유만세>
“무고하나, 어떻노? 니 덕에 부산서는 잘 지내고 올라왔다 아이가” 영철이었다. 수해다 역병이다 전국이 난리 통인지라 겸사 겸사 안부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서울 역시 생필품 품귀현상에 곡물이 말랐다고 걱정이었다. 매점매석이 판을 치는 가운데 사회주의자들은 거 보란 듯이 북한은 이미 전답을 인민들에게 다 나눠주었다고 선전들 하면서 민심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걱정을 앞세웠다. 지난 6월초 소련대사관이 서울서 철수하면서 이제 남북이 영원히 갈리는 게 아니냐는 원성과 이 모든 것이 미국의 농단이란 것이 좌파들의 생각이었다.
하긴 미국은 소련에다 북한에도 미(美) 대사관 설치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소련은 응답대신 스스로 서울에 있는 자국 대사관을 철수시켰다. 미군정에서는 서울의 소련대사관이 남한의 좌파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근간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주변 분들은 다 안녕하신가?” 성일의 물음에 영철은 “그 사람은 이번에 악극단에 입단했다. 노래솜씨 하나는 일품 아이가. 인물도 좋고해서 안 뽑히겠나. 잘 된 일이제. 자네 덕에 보문동 끝자락에 집도 한 칸 장만했다 아이가.
여간 좋아하지 않더라. 집들이 때 가봤다. 첫 공연 때도 가봤고.... 국제극장서 공연했는데 그마 사람들 메어터지더라. 첫 번째로 나와가 옥 굴리듯 한 곡 뽑았는데 객석에서 휘파람불고 난리 났다 아이가!” “그 친구 부모가 안 계셨던가?” “아버지가 왜놈들 밑에서 탄광일 했다 안 카더나. 폐병으로 일찍 죽었단다. 혼자 경성와서 살다가 이번에 고향가서 여동생 데리고 올라왔다. 지어미는 한사코 고향에 있겠다해서 그냥 왔다더라.” “강원도 정선 여자라카지 아마” “맞다, 자랄 때도 그 지역서는 최고로 노래를 잘 했단다” 전화를 받는 사이 김서방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짠 일이고 공장에 안 가있고” “문제가 많읍니더 형님. 등이 통 안 팔리예. 그라고 공장장 박씨 장남이 죽었심더” “우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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