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 컬럼 '미래를 살라'
서기원 컬럼 '미래를 살라'
신약성서 27권에 사도바울이 쓴 13권의 서신 중 고린도후서가 있는데, 15장 17절에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성구가 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 그리스 다소에서 철학을 공부한 철학자였으며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회심하고 자칭 사도가 된 사람이다.
어쩌면 인류는 새로운 세상을 원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려고 한다. 아놀드 토인비와 일본의 와까이즈 교수와 대화로 쓴 책 ‘오늘을 사는 보람’에서도 인간의 절망과 현실, 이 세상에 대한 이해의 불일치 관계를 대화로 나누었다. 미래라는 개념은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서 항상 젊은이들에게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매혹적인 말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속적인 개념에서 본다면 어제로부터 오늘, 오늘에서 미래로 가는 어떤 있을 법한 어제와 같은 오늘과 같은 영역이다. 미래라는 말 또 내일(來日)이라는 말은 원래 우리의 고유의 말이 아니라 한자에서 온 아직 오지 않은 때이다. 본인은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내일이라 하지 말고 순수한 우리말로 ‘그 날’이라고 한다면 어제, 오늘, 그 날로 바꾸어 사용하고 싶다.
영어 Future 단어의 뜻은 미래, 장래는 물론이고 선물(先物)계약이라는 뜻이 있고 영어 고어에서는 약혼자라고 했다고 하니 이 뜻이 더 함축성이 있다. 라틴어 Futrus는 영어로 going to be...와 같이 오늘에서 생각할 수 있는 뜻이 강하다.
고인이 되신 함석헌 선생은 저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에서 한국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요 미래도 고난과 싸우는 입장을 취하였다. 신학자 떼야르 사르뗑은 현대인의 개념을 시간과 공간이라고 하고 현대인의 정의를 땅에 심었던 씨앗이 오늘 꽃순이 나오고 내일에 가서 꽃이 되는 과정과 같다고 했다.
또 샤르뗑은 물질의 궁극을 Omega Point라고 했고 정신적인 궁극을 Christos genesis라고 했다. 즉 인간의 삶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 새롭게 탄생할 때 인간의 미래, 세계의 미래, 우주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토마스 아킴퍼스(Thomas A Kempis)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인 것에서 영원을 보며 하늘에 속한 것과 이 땅에 속한 만물안에서 똑같이 거룩한 빛의 삶을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직 오지 않은 그 때를 그 날이라고 했을 때, 이 역사 속에서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준비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날을 꿈 꾼 사람은 현실주의자인가? 미래지향주의자인가? 지금부터 100년 전 3.1 날 그 날을 기다리며 독립선언을 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애국운동은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을 위해 미래를 산 사람들이다.
어떤 시인은 오늘은 울지 말자/ 어제 울었고/ 또 내일 울지라도/ 오늘 만은 울지 말자/ 오늘의 현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 그 날의 삶을 살어 보자.
글/ 서기원 목사(의정부의료원 원목,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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