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산 목사의 생각해 봅시다/ 외국인 의료상담
생각해 봅시다/ 외국인 의료상담
가슴을 찌릿하게 하는 작은 보람이 기쁨이 되어
필리핀 출신 L씨(여, 41세)는 20년 전인 1995년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그녀는 하루 14시간씩 일을 했지만 연수생이라는 자격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인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으며 3년의 연수 기간을 마쳤다. 귀국할 때가 되었지만 수중에는 가족들에게 선물살 돈조차 없어 고민 끝에 돈을 더 벌어서 귀국 할 결심을 하고 체류기간을 넘겨버렸다.
그 후 2003년 같은 필리핀 남성을 만나 결혼을 하였으며 결혼 후 3년 만에야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너무 약하여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인큐베이트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치료비만도 천만원이 넘어 그나마 두 부부가 피땀 흘려 번 돈을 모두 치료비로 쏟아 부었다.
다행히 인큐베이트를 벗어날 순 있었지만 아들의 병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젖을 먹일 때마다 토해내고 경련을 일으키고 실신하기를 반복해서 L씨는 혹시 아들이 죽는 것은 아닐까 겁이날 정도로 노심초사하며 아들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더 이상 집에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병원에세 병명도 생소한 '복잡심장기형'으로 판정을 받아 2006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친 심장질환 수술을 받고 겨우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향후 '정중 흉골 절개술 및 심폐기 보조를 통한 라스텔리 도관 교환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L씨의 아들은 현재까지도 심장질환인 '총 동맥간증'으로 정기적인 검사를 받으러 다니고 있는데, 검사비가 너무 비싸 도움을 청하였다. 과거 서울대병원은 의료공제회 협력병원이어서 의료공제회원인 L씨가 어느 정도 할인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의료공제회 협력병원이 아니라서 수술비용과 검사비용이 벅찬 상황이 된 것이다. 하여 의료공제회에 협력하고 있는 다른 대학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상담 과정에서 아들이 조금 산만하게 뛰어다니며 주의력 결핍의 증상이 보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올해 9살이 되어 취학 연령이 지났지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L씨는 심장질환과 경계성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현재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에 가서 입학을 허가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해당 초등학교에서 아들이 취학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서나 의사의 소견서가 있으면 취학할 수 있다고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들의 질병을 고치고, 또한 수술에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아들의 병을 완치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아들을 받아 줄 특수학교를 알아봐 주기로 하고 상담을 마쳤다.
상담 후 우선 청암교회 예배 광고시간에 이런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그러자 다문화도서관 상임이사로 있는 김영희 교우가 해당 지역에 아들을 돌봐줄 돌봄 교사가 있는지 알아봐 주기로 하였다.
일주일 후 김영희 교우로부터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해당 구청장이 같은 학교 출신이며 민주동문회 회원인데, L씨 아들의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청했더니 돌봄 교사는 물론 모 초등학교 특수학급반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올해 3월 초 L씨의 아들은 일반 학교인 ㄷ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특수학급반에 편성되었으며, L씨 부부는 아들에 대한 걱정을 덜고 열심히 생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애써 주어서 고맙다는 L씨의 전화 한 통만으로도 가슴이 찌릿 하는 성취감을 맛 볼 수 있었다. 함께 애써 주신 주변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또 하나의 작은 보람이 이주민을 위한 사역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글/ 이재산(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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