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훈 미공개 소설 연재 32/ ‘조기 돌림’
방영훈 미공개 소설 연재 32/
부산상회(釜山商會)-‘조기 돌림’
이런 상황이라면 투망을 하기가 어렵다. 상대방 배들이 너무 밀착한 관계로 어망이 다른 배들에 걸려버리기 때문이다. `배걸이다.‘ 직감적으로 이를 알아차린 여 선장은 전 선원들에게 비상대기 명령을 다시 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다른 배들이 더 이상 근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응당 배걸이라면 이들이 우리 배에 사다리를 걸고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바다에서는 때로 허탕을 친 배들이 포획한 생선을 함께 나누어갖자고 올라오는 해적행위를 하거나 아예 배를 뺏거나 하는 일이 혹간 벌어지기도 하였다. 특히 국가 간 바다경계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로 이런 해적행위가 국가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같은 민족끼리의 배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뭔가. 아직 조업을 시작도 하기 전 아닌가. 선장이 갑판으로 나가 상대방 배를 살폈다. 상대진영에서는 사람이 코배기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유령선 같다.
여선장은 다시 기관사를 향해 항해를 지시했다. 삼일호가 조심스레 앞을 향하고 나아가자 그들은 점잖게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삼일호를 중심으로 함께 속도를 맞추었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저녁때까지 이어졌다. 정박하면 에워싸고 달리면 뒤쫓는다. “안되겠다. 배를 가까이 대라, 영문을 알아야겠다.”
선장이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그러나 여선장의 격앙된 목소리만이 물결 따라 메아리 되어 돌아올 뿐 아무런 응답이 없다. 고의적인 것이 분명했다.
삼일호는 밤을 도와 다시 육지를 향해 속도를 냈다. 고요한 밤바다에 배 등불만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파도에 흔들렸다. 선원들조차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배들이 사라졌다. 어느 새 오륙도가 거진 다 온 지점이었다. 여선장은 하는 수 없이 빈 배를 영도섬 인근에 정박시켰다.
<조기돌림>
강창규선장은 예전 조기잡이 어선 선장으로 명성을 날린 사람이다. 물때를 알 뿐 아니라 유통과정까지 훤히 꿰고 있어 웬만한 남, 서해안 바닷사람들은 다 그를 알아보았다. 강선장이 이끈 해방호는 삼일호보다 하루 일찍 부산 앞바다를 헤치고 나아갔다. 밤새 거제도 남해를 지나 여수 앞바다에서 조업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조기는 매년 4~5월이면 남서해안 일대가 어장이다. 한려수도 멸치어장을 지나쳐 파도를 치고 오르면 곧 나르도섬 등대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남서방향을 잡아 한 시간여 달리자 이윽고 늘 그가 조기를 퍼 올리던 바다와 맞닥뜨렸다.
해방호는 아침이 되자 쉴 틈도 없이 낚시그물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마수걸이가 신통치 않다. 고기떼가 서쪽으로 이동했으리라. 강선장은 다시 흑산도를 바라고 배를 움직였다. 그때 그의 눈에 이미 이 지역에 닻을 내린 배들이 여기저기서 조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물을 풀어라” 그의 명령에 크고 넓은 어망이 원을 그리며 자리를 잡고 가라않기 시작했다. 연신 ‘파닥’ ‘파닥’거리는 조기들이 쉴 새 없이 걸려 올라오기 시작한다. 강선장은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바다위로 담배연기를 한 모금 흘려보냈다.
조기는 회를 치지 않는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이 그대로 말린 굴비로 영광지역은 바람도 좋고 이 지역 사람들의 정성도 깊고해서 정평이 나있다. 지져먹기도 하고 구이로도 그런대로 먹을 만한 생선인데 말린 조기를 구이로 해서 찬물에 밥을 말아 함께 먹는 맛이 일품이다. 특히 호남지역 사람들은 이때 갓김치를 곁들이며 탁배기 한 사발과 더불어 인정을 나눈다.
강선장은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연기 속에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외나로도는 이 지역 유일하게 등대가 있는데다 인근 어장이 크게 형성되어 왜정때부터 뱃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파시(波市)는 이 일대에서 가장 컸고 각종 어물이 풍부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흥청거리는 곳이었다. 이미 우체국이나 요리집이 들어와 있고 선원들을 위한 숙박업소도 꽤나 번창하고 있었다.
하루는 객고나 풀양으로 요리집 주변을 얼씬거리는데 낯익은 주모가 그의 손을 끈다. “새로 온 새악씨가 있어. 아직 처녀여, 나 강선장땜에 숨겨놨지라” 고향이 무주라 했다. 산골서 농사일하기 지쳐 잠시 돈 벌러 전주로 나왔다가 그대로 이곳으로 끌려왔다는 것이다. 손이 솥뚜껑만 했다. 긴긴 여름내내 쟁기질하느라 그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속살은 여간 뽀얗지 않다. 정분이 났다. 강선장은 그 날로 주모한테 듬뿍 쥐어주곤 방을 한 칸 얻어 살림을 차렸다. 별반 음식솜씨가 있는 것 같지는 않더니 나물무침이나 비지같은 육지음식은 곧잘 만들어 올린다. 그런 사이 아이가 생겼다. 여자가 몸도 풀 겸해서 친정엘 다녀오겠다고 의논을 넣는다.
“그래 이번 배에서 돈 좀 만들어 줄게”하고 강선장은 겨울이 풀리기가 무섭게 배를 부렸다. 선주는 좀 이르다며 반대했지만 그는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섬을 떠난지 한 세시간쯤 지났을까 하늘이 까맣게 닫히는 게 보였다. 선원들이 앞장서서 말했다. “큰 파도가 올 듯 싶구마이라우. 빨리 피항해야 쓰겄시오” 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울고 이어 장대비가 쏟아져 내린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때 바로 눈앞에서 절벽같은 높은 파도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강선장이 뭐라 고함을 치기도 전에 파도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강선장이 정신이 들었을 때 그의 주변에는 섬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하고 푸르기만 하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했다. “돌풍이 몰아쳤어야. 먼 바다 어디메께 지진이 있었는가베여. 다 죽었어. 자네만 기적같이 떠밀려온거여”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게 바다였다. 강선장은 물질에 나선 이후 처음으로 두려움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음날 일본인 지서에서 조사할 게 있다고 그를 데려갔다. 선주는 출항허가를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선주들끼리의 어촌계에서 실종된 선원들의 장례비는 거두어졌지만 보상할 방법이 없었다. 당시에는 보험이 없던 때였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했다. 마침내 그에게 특수절도혐의가 부과됐다.
배를 도둑질하여 바다로 나간 셈이 된 것이다. 전라남도 경시청으로 옮겨지자 한때 동료 뱃사람이었던 방영삼이 유일하게 면회를 왔다. 호남일대에서는 그가 타지역 사람으로 너무 일찍 출세한 것에 괜스리 타박을 주고 싶은 참에 사고가 난 것이었다. 강선장은 꼬박 1년을 감옥살이한 끝에 해방과 더불어 풀려나자 제 아내보다 먼저 방영삼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갔다. “나 배 척 얻어 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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