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플러스/ 평화의 기차로 유럽의 섬나라 영국까지
평화 플러스/ 평화의 기차로 유럽의 섬나라 영국까지
얼마 전 평양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세 가지 모습을 그려봤다. 첫째,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서 15만 인민을 상대로 직접 연설한 것처럼. 연설 내용이 감동적이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에겐 폐쇄된 독재체제에서 ‘남조선 괴뢰의 수괴’를 대중 앞에 세워 공개 연설을 하도록 이끈 젊은 지도자의 두둑한 배짱이 더 감동적이었다.
꿈도 꾸지 못한 아름다운 충격이었다. 하나를 받으면 둘을 주는 게 바람직한데, 올해 안에 ‘북한괴뢰의 수괴’가 대담하게 서울로 오면 국회에서 연설할 기회를 줘야하지 않을까. 광장에 서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국회 주변에서 ‘태극기 부대’가 난동을 부리고 국회 안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행패를 부리면 남쪽 사회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남한 바로 알기’ 선물이 될 수 있다. 북한 사회가 변치 않는다고 비판하는 남한 사람들이 얼마나 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둘째, 내 동지들과 평양을 거쳐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모습이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쪽 사람들의 백두산 관광을 합의했는데, 11년 후에야 문재인 대통령이 시범을 보였듯이. 나는 20년 전인 1998년부터 평양 땅을 밟아보았고, 15년 전인 2003년엔 개마고원 삼지연공항을 거쳐 백두산에 올라보았다. 2006년부터는 2년에 한 번 꼴로 압록강-백두산-두만강으로 이어지는 북중 접경지역을 둘러보았다. 2008년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가서 바이칼호수에 몸을 담가보고 몽골 종단열차로 울란바토르까지 가서 몽골 초원을 거닐어보았다.
머지않아 한반도 종단철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이어질 것을 꿈꾸면서. 이에 앞서 2000년부터는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런던에 들어갔다가 벨기에 브뤼셀로 나오는 기차 여행을 즐겼다. 위와 같이 여행할 때 대개 20-30명의 동지를 모아 안내를 맡았기에, 나와 함께 평양과 백두산까지 여행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10여 년 전부터 대기 중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끊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신청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역마살이 낀 것 같다고 핀잔하는 아내도 동반해 동지들에게 안내원 노릇하며 평양과 백두산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
셋째,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나 아버지로 불리는 내 은사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가 아내 푸미코 갈퉁(Fumiko Galtung)의 고국인 일본에서 자신의 고국인 노르웨이까지 기차여행을 즐기는 모습이다. 그는 늦어도 1996년부터 이와 같은 꿈을 꾸어왔다. 2000년 6월 역사상 처음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내 은사의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나는 4개월이 지난 2000년 10월 일본 <평화의 배 (Peace Boat)>에 올라, 3개월간 세계를 일주하는 프로그램의 강연을 맡아, 500여명의 일본인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평화의 배’를 타고 세계여행을 즐기는데, 몇 년 뒤엔 ‘평화의 기차’를 타고도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에서 유럽의 섬나라 영국까지. 얼마나 환상적인가? 이 꿈은 이루어질 수 있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 10년 안에. 조건이 있다.
여러분의 일본이 남북한의 관계 진전과 평화통일을 지원해야지 방해하면 안 된다. 마침 우리가 이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모리 총리가 일본 큐슈와 한반도 부산을 잇는 해저터널을 제안했다고 여기 대만 신문 The China Post에 보도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제안한 게 아니라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세계평화학자들의 오래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 젊은이가 질문을 던졌다. 해저터널 공사비가 막대할 텐데 경제성이 있겠느냐고.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맞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 것이다. 그런데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화물을 비행기로 운송하면 빠르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배로 실어 나르면 싸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차 운송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참고로 일본의 1년 군사비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아무리 적어도 아깝다고 생각해라. 소모적 파괴비용이기 때문이다. 해저터널 공사비는 아무리 많아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생산적 투자비용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해저터널 건설은 1980년대 초부터 문선명 통일교총재가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엔 노태우 대통령도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한일 해저터널 상상도 남북한 철도 연결에 대한 구상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구체적으로 밝혔다.
경의선을 통해 중국 상품을 남쪽에 날라다 주면 1년에 4억 달러를 벌고, 동해선으로 러시아 물자를 전해주면 해마다 10억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면서. 이젠 남한과 중국 사이의 무역량이 남한과 미국 및 일본 간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아진 터에 경의선이 연결되면 어느 나라가 가장 큰 이익을 챙길까. 이렇듯 남북 사이에 철도가 연결되고 나아가 부산에서 큐슈까지 해저터널을 통해 기차가 다니게 되면 막대한 경제이익을 얻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듯 “평화가 경제”다. 그리고 우리에게 ‘여행의 자유’가 확대된다. 휴전선에 가로막혀 완도(完島: 완전한 섬)나 다름없는 남한이 진정한 반도(半島)가 되어, 비행기나 배뿐만 아니라 기차나 버스로도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평화학자 겸 평화운동가의 길을 열어준 은사 갈퉁 교수가 이제 90 문턱에 이르러 일본에서 노르웨이까지 기차여행을 즐기는 꿈을 생전에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대신 그의 제자가 그를 그리며 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에서 유럽의 섬나라 영국까지 평화의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꿈은 머지않아 실현되리라 기대한다.
글/ 이재봉 교수(원광대 평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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