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던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집 ‘새’
생각해 봅시다
살아있던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집 ‘새’
의정부와 인연이 깊은 천상병 시인은 1930년 1월 29일 일본 효고 현에서 태어났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부모와 귀국하여 경상남도 마산에서 자랐다가 마산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다녔지만 4학년 때 그만두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때에는 미국 통역관으로 근무했으며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재학 중 ‘현대문학’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그는 당시 문학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대단한 주당이자 기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런데 이런 천상병 시인이 간첩사건에 연관되어 큰 고초를 겪었다.
1967년 5월 3일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윤보선 후보를 1백 10만 표 차이로 겨우 이기고 당선되었다. 이런 현상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는 강력한 정권 유지를 위해 엄청난 조작사건을 기획한다. 바로 ‘동백림 사건’이다. 동백림은 당시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을 한자로 음차한 표기다. 한 독재자의 무한한 권력욕이 서른일곱 살의 젊은 천상병 시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고 발표했는데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뜻밖에도 천상병 시인도 이 사건에 관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천상병 시인이 이 사건에 연류된 것도 역시 술 때문이었다. 천상병 시인의 대학동기 중 강빈구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독일 유학시절 북한 김일성대학 교수들과 두 차례 정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귀국 후 서울상대 조교수로 근무 중 이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그는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친구인 천상병 시인에게 자신의 독일유학 시절을 이야기 하면서 몇 차례 막걸리 값을 쥐어 주었던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이 말이 화근이 되어 천상병 시인은 중앙정보로 잡혀와 3개월간 모진 고문과 또 3개월의 수감으로 폐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죄명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 및 형법상의 공갈죄였다. 요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몇 푼의 막걸리 값이 그를 간첩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는데 특히 전기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고통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했다.
아무튼 천상병 시인은 6개월의 옥고를 치룬 후 선고 유예로 풀려났으며 의정부 수락산 밑에 살며 인사동에 나왔는데, 친구들에게 1000원을 얻어 막걸리 한잔 마시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지만 1970년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이렇게 쓰러진 천상병 시인은 폐인처럼 생활을 하다 행려병자가 되어 아무도 모르게 1970년 서울 청량리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어 무연고자로 분류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천상병 시인이 인사동 등지에 몇 달 동안 나타나지 않자 주위의 지인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다들 그는 분명 사망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살아생전 시집 한 권 발간 못한 그를 위해 유고시집을 발간하기로 하고, 지인들 중심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 60여 편의 유작(?)시를 모아 1971년 ‘새’라는 시집을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가 화제가 되어 신문에 실리기도 했는데 이 기사를 읽은 병원 의사가 “우리 병원에 천상병 시인이 입원 중이다”라는 연락이 왔다.
살아있는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집 ‘새’는 당시로는 호화스러운 양장본으로 꾸며졌는데 천상병 시인의 최초 시집이 되었다. 지인들은 비단 보자기에 호화 양장본으로 꾸민 시집 10권을 싸 들고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는 자신의 유고시집을 가만히 살펴본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인세는 어찌 되었노?"였다. 그를 찾아간 지인들은 미처 인세 생각을 못 했던 탓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고 한다. 그날 천상병 시인은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지인들을 맞았다고 한다.
그의 다리 사이에는 전기고문 후유증으로 소변을 가리지 못해 채워진 커다란 기저귀가 있어 찾아간 지인들은 눈물만 흘리고 별 말들이 없었다. 독재자란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가진 집권자를 말한다. 또는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인 사람을 빗대어 일컫기도 한다. "독(獨홀로) 재(裁재단하는) 자(者자)"라는 뜻이다. 좋은 옷감을 자기 멋대로 가위질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술가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소설가 천승세 씨는 “평생 평화만을 쪼던 새가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라고 천상병 시인을 표현했듯이 정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평화만을 쪼개던 시인을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희생시킨 것이었다.
천상병 시인은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1935~2010) 씨가 자신을 수 년 간 간병을 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1972년 결혼했으며 1979년 ‘주막에서’ 1984년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1991년 ‘요놈 요놈 요 이쁜놈’ 등의 시집을 발표했으며 1993년 4월 28일 간경화증으로 ‘귀천’했다.
글/이관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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