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교수의 '남한의 통일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평화 플러스/
남한의 통일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2)
이번 호 평화플러스는 지난 7월 20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이재봉 교수(원광대)가 합수 윤한봉 10주기 기념 학술심포지엄에 발표한 논문을 2회에 나눠 발췌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반전 반핵에 관해>
(지난호에 이어) 군사훈련과 관련해, 남한과 미국이 ‘방어’ 훈련이라 했지만 북한은 ‘북침’ 훈련이라고 비난했던 ‘팀 스피리트 (Team Spirit)’는 1976년부터 1993년까지 실시되다가 1994년 북핵문제를 협상하면서 북한의 요구로 중단됐다. 1995년부터 ‘연합전시증원훈련(RSOI)’이 도입되고, 2002년부터 ‘독수리훈련(Foal Eagle)’과 통합되었으며, 2008년부터 ‘키 리졸브(Key Resolve)’라는 이름으로 실시되어오고 있다.
2016년부터는 ‘김정은 참수(斬首)작전’까지 포함되었다.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는 1980년대 말까지 국회에서조차 존재 여부를 논의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비밀이었지만, 대학생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반미운동과 아울러 반전 반핵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남한 정부와 언론은 이를 거세게 비난했다. “미국의 핵 우위와 미국의 핵우산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존립하는 세상을 우리가 살아온 것”이라거나 “우리가 미군의 상주를 필요로 하고 위험 부담을 안은 채 그들의 핵 지원을 마다하지 않으며..... 한미 합동군사훈련 팀스피리트를 해마다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인 것이다”고 강변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미국은 남한에 배치했던 2,000개 이상의 핵무기를 철수했다. 해군 핵무기는 “적당한 때에” 재생하거나 재배치할 수 있도록 했고 핵무기 저장시설도 유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남한에 지속적으로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로 무장된 잠수함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소개했듯, 2006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네 번 핵실험을 했다. 원자폭탄뿐만 아니라 수소폭탄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한엔 ‘북핵 문제’에 대해 일방적 주장이나 왜곡된 시각이 있다.
첫째, 남한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만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은 ‘한반도/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같이 논의하자고 한다. 주한미군의 핵무기도 문제 삼는 것이다. 둘째, 과거 남한에 배치됐던 핵무기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꼭 필요했지만, 지금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한반도 평화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고 인식한다. 이와 비슷하게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이 핵무기와 미사일로 북한을 위협하는 행동이나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합법’이며, 이에 맞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불법’으로 간주한다. 2017년 6-7월 6.15기념식 축사에서부터 한미정상회담을 거쳐 베를린 연설까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해 ‘도발’이란 표현을 10번 이상 사용한 배경일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는 현실은 불만스럽더라도 ‘도발’이란 말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미국은 각종 핵무기와 미사일로 북한을 위협해왔다.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를 실은 다양한 함정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배치해놓았다. 1990년대엔 폭격할 뻔했다. 2000년대엔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는 김정은의 목을 따겠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남한과 합동으로 실시한다.
한반도 핵우산의 상징이 되고 있는 B-52, B-1B, B-2 핵폭격기. 괌 미군기지에서 4~6시간 만에 한반도에 도달한다. 이런 터에 북한이 미국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북한엔 주한미군 같은 외국군대가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핵우산도 받지 않고 있다. 남한과 미국은 해마다 10번 안팎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끌어들여 단 한 번도 합동군사훈련을 갖지 않는다.
북한 국방비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남한의 1/5을 넘지 못하고 미국의 1/100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래식 군비경쟁을 도저히 할 수 없기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지 않겠는가. 많은 인민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큰돈 들여 핵과 미사일 개발에 힘쓴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걸핏하면 북한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것을 ‘도발’로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문 대통령은 이런 왜곡된 시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maximun pressure)’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며 중국에까지 북한에 대한 압력을 요구했다. 중국은 이른바 ‘북핵 문제’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모순’이라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나 전쟁 위협이 없었다면 ‘북핵 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또한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못마땅해도 자신의 안보를 위해 북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재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남한과 미국의 군사훈련과 북한의 핵개발을 같이 중단하자는 이른바 ‘쌍 중단 (雙中斷)’을 제안했다. 미국은 한사코 거부한다. 그리고 남한의 보수극우 정당과 언론은 미국보다 더 거세게 반대한다. 남한의 보수극우세력과 미국은 북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한 7월 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러-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의 핵, 미사일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쌍중단'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 추진한다는 '쌍궤병행'을 기초로 하는 한반도 위기 해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평화협정에 관해>
앞에서 얘기했듯, 한국전쟁은 ‘실질적으로’ 1953년 7월 끝났지만 ‘법적으로’는 종식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평화협정을 맺자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미국과 남한은 ‘당분간’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과 미국이 더 이상 싸우지 말자며 전쟁을 완전히 끝내버린다면 주한미군이 유지될 명분이 없어지거나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7월 6일 독일에서의 연설을 통해 평화협정에 대해 얘기했다.
남한 대통령의 평화협정 언급 자체가 획기적이다. 그러나 구체적 과정은 말하지 않고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완전한 비핵화’가 북한만의 핵무기 완전 폐기를 뜻한다면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없이 핵무기를 폐기할 생각조차 하겠는가.
이에 나는 3단계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다. 60년 이상 유지되어온 정전체제를 일시에 변경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은 앞으로 반드시 껴안아야 할 동포라는 민족적 시각과 미국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동맹이라는 자주적 인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제1단계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폭격이나 전쟁 위협을 그만두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춘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당연히 중단해야 한다. 남한이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도발’로 간주하고 한미동맹에 매달리는 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조차 주도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제2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꺼려하고, 북한은 주한미군이 유지되는 한 핵무기를 폐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가장 큰 훼방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제3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을 비슷하게 감축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다. 나아가 남한이 제안한 국가연합이나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 낮은 단계로 통일을 모색한다.
<평화통일에 관해>
‘하나의 코리아’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여기서 평화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없는 상태다. 전쟁은 폭력의 한 형태일 뿐이다. 따라서 평화통일은 전쟁에 의한 무력통일뿐만 아니라 인위적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도 배제하는 것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6월 30일 미국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한 정권의 ‘교체나 붕괴’를 원치 않고 ‘인위적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보다 중국의 북한 점령이나 북한 군부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훨씬 클 것이다. 중국이 약 1500km의 국경을 마주하며 북한 구석구석에 엄청난 투자를 해놓고 있는 터에, 중국과 북한은 전통적으로 ‘이와 입술의 관계 (脣齒關係)’임을 주장하며 개입하기 쉽다는 말이다. 북한이 무너지면 미군이 압록강-백두산-두만강으로 이어지는 경계선까지 올라가 주둔하기 쉬운데 중국이 이를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100만이 넘는 병력과 첨단무기를 지닌 북한 군부가 남한에 순순히 투항하기보다는 결사항전으로 제2의 한국전쟁이나 최소한 게릴라투쟁이라도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 설사 북한의 붕괴가 외세의 개입이나 무력충돌 없이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남한은 혼란을 수습하고 탈북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다. 2017년 현재 3만 명 안팎의 탈북자도 제대로 껴안지 못하는 터에 북한이 붕괴되면 생길 2천만여 명의 ‘빌어먹을 사람들’을 어떻게 수습하겠는가.
따라서 남한과 북한은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 남쪽에서는 자유를 강조하되 복지정책을 확대하며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북쪽에서는 평등을 중시하되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더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자유와 평등이 어우러지는 복지국가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재봉(원광대 평화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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