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의 ‘환생 월이’ 박서영 향토문화 길라잡이
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환생 월이’ 박서영 향토문화 길라잡이
올해 정유년도 벌써 가을이라 시월인데, 정유재란이나 임진왜란을 떠올리면 무엇보다 이순신 장군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거둔 대승 중에서는 당항포 대첩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숨은 공로자가 바로 고성(固城) 무기정 기생 월이(月伊)다.
월이는 일본 밀정 첩자의 지도를 몰래 변조하여 이순신 장군으로 하여금 당항포 해전에서 대승을 이끌게 한 장본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당항포 쪽 간사지에서 물길이 고성만 수남동 철뚝 앞 바다를 통해 통영, 남해로 연결되도록 월이가 감쪽같이 바꿔놓은 것이다. 간사지가 막다른 바다하고도 그 끝인데도 말이다.
그때나 이제나 간사지와 고성만 철뚝 앞바다 사이에는 엄연히 육지가 가로놓여 있다. 요컨대 이순신 장군이 왜군들을 막다른 곳에 몰아넣어 몰살시킨 승전의 출발점이 월이인 셈이다. 지금도 간사지 바다를 왜군들이 속았다고 속싯개라 한다. 요즘 고성엔 <월이제(月伊祭)> 행사준비로 한창인데, 그 중심에 고성 출신으로서 ‘환생 월이’로까지 불리는 박서영(66세, 사진 왼쪽) 향토문화 길라잡이가 있다. 문학박사이기도 한 그녀는 ‘박박’이라는 애칭마저 낯설지 않게 들린다. 그야 어쨌든 일본생활을 접고 귀국하자마자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월이 재조명 작업에 앞장 선 그녀는 고성향토문화선양회장이기도 하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어렵사리 척척 처리해내는 여장부의 목소리에 결기가 넘친다. “진주에 논개가 있다면 고성엔 월이가 있습니다. 고성을 넘어 전국, 아니 인류공동의 지적재산, 문화상품으로 우리 다 같이 힘 모아 활짝 꽃피워야죠.” 10월 21일 올해 처음 고성에서 열리는 월이제엔 초연창작 <월이춤>을 비롯해 시화전 등 월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단다. 월이춤은 내가 쓴 춤 대본이고 구영미 안무에 그녀의 기획‧총연출이다. 월이제 행사 의 총 책임자로 그녀의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사실 나는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활성화 사전지원 작품으로 선정된 <간사지>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친구인 고(故) 강태기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었는데, 오랜만에 사실주의 연극이 나왔다고 온갖 매스컴이 떠들썩하던 기억이 어제인 양 새롭다.
간사지 속싯개는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거류산자락 거산리(巨山里) 앞바다이자 월이의 지도 변경으로 이순신장군의 당항포 승전고를 울리게 한 그 진원지다. 그래서 나는 간사지 연극에서 ‘월이제(月伊祭)’라는 극중 지역축제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춤추는 장면을 관객들에게 일찌감치 선보였음을 밝힌다.
어쩜 춤에는 문외한이면서도 월이춤을 고성농요 내지는 고성오광대와 연결시켜 잘 버무리면 고성 춤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끙끙댔었다. 그런데 이제 극중 월이제와 실제 현실 속의 월이제와의 만남이라니,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에 우뚝 선 기분이다.
솔직히 극작가로서 월이제의 <월이춤> 대본을 의뢰받고 조금은 살짝 혼돈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연극 <간사지>에서 다뤘던 실제와 구전(口傳) 월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이제 다시 극중 춤이 아니라 당당하게 독립된 창작 <월이춤>으로 고향을 찾는다 생각하면 감회가 남다르다고나 할까? 아무쪼록 월이가 지역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월이를 화두로 ‘환생 월이 박서영 박박’과의 인연은 이쯤에서 좀체 끝날 것 같지 않다. “시, 소설, 희곡의 문학 장르에서 연극과 춤, 세미나까지 지평을 넓혔으니, 문화콘텐츠에서 ‘생활 월이’로의 대중성 확대 재생산을… 도자기, 한복, 인형 등등, 언젠가는 영화도 나와야겠지요. 영화를 3편 한 최작가가 시나리오를 준비해야죠?” 오랜 일본생활로 몸에 밴 친절 탓인지 상대방을 똑바로 보고 핵심을 찌르듯 상냥하게 말하는 그녀의 꿈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늘 푸른 소나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직공원 맞은편 사무실은 그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사랑방이다. 그들 동참자 여러분이 뜻을 모아 지난번엔 경복궁역 주변에서 일일바자회를 연 적도 있다. 월이를 위한 거라면 언제 어디서 뭐든 하고본다는 그 자세가 무척 건강하다. 환생 월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번 월이제를 계기로 모름지기 박서영 향토문화길라잡이의 발걸음이 더욱 뚜렷해지고 희망적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글/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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