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체제 어떻게 다른가?(1)
평화 플러스/ 남북한 체제 어떻게 다른가?(1)
* 이 글은 2017년 11월 3일 경기평화교육센터에서 “남북한 체제 비교”를 주제로 이재봉 교수(원광대 평화학)가 강의한 내용을 요약 발췌한 것을 두 번에 나눠 소개한다.(편집자 주)
인류가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 가치 두 가지를 뽑는다면 자유와 평등일 것이다. 이 가운데 남한이 추구해온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자유를 더 중시하고, 북한이 지향해온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공산주의는 평등을 더 중시한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은 서로 보완적이면서도 상충적이다.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면 사회적 평등은 축소되고, 사회적 평등이 확장되면 개인의 자유는 위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남북의 이념이나 체제를 비교하면서 남한은 민주주의인데 북한은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부적절한 비교다. 민주주의는 정치 이념이나 체제를 가리키고, 사회주의/공산주의는 경제 이념이나 체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고 사회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으며, 사회주의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고 독재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다. 대개 민주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경제와 짝을 이루고, 사회주의 경제는 이른바‘프롤레타리아 독재’ 정치를 거치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그리고 사회주의와 독재주의를 같거나 비슷한 개념으로 쓰는 경향이 크다. 이것 역시 잘못이다.
<1.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정의하기 어려운 정치학 용어다. 개념이 애매모호하고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2017년 현재 지구상의 약 200개 나라 가운데 스스로 민주주의가 아니라 규정하는 국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남, 북한부터 그렇다. 남한은 1948년 정부수립 때부터 지금까지 단 1년도 민주주의가 아닌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 때문이다.
이승만의 12년 독재정치에도 민주공화국이라 했고, 박정희의 18년 군사독재 때도 민주공화국이라 우겼다. 북한은 남한보다 민주주의를 더 강조해왔다. 남한은 헌법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을 내세웠지만, 북한은 나라 이름에서부터 민주공화국을 앞세우기 때문이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8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3대에 걸쳐 세습 통치를 해도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와 ‘공화국’은 변함없다.
민주주의에는 종류가 많다.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와 심의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이 1950년대에 주창했던 교도민주주의와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에 독재정치를 강화하며 이름 붙였던 ‘한국적 민주주의’까지..... 이 가운데 이념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널리 자리잡아온 대표적 민주주의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미국과 남한 등이 지향해온 자유민주주의, 중국과 북한 등이 추구해온 인민민주주의,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이 실시해온 사회민주주의다.
첫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것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정치 이념이다. 17-18 세기 유럽에서 발전된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개인의 자유와 법적 평등을 중시한다. 여기서의 자유는 각 개인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 최소한의 제한을 받으며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상태요, 평등은 개인이 타고난 본질적 가치가 동등하며 세습적 특권이 거부되는 상태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주의와 사유재산권 등을 중시하므로 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결합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말 앞에 아무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를 가리키기 마련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남한이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둘째, 인민민주주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들에서 인민의 평등을 목표로 채택해온 정치이념이다.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 계급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민의 대표기관인 의회 등을 도입해 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반동’들을 제거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북한에도 인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라는 의회가 존재하고 기능하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가 수령의 통치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없는데도 인민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셋째,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적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이념이다. 노동자 계급에 의한 폭력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를 이룬다는 취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의 스탈린 독재주의가 공산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쓰이게 되자,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실현되며, 민주주의도 사회주의에 의해서만 달성된다”는 민주사회주의운동이 영국과 서독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사회복지정책이 가장 잘 발달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민주주의다.
<2. 남한의 다당제와 북한의 1당제>
남한은 오랫동안 군사독재를 통해 양당제 같은 1.5당제를 유지했다. 거대한 여당과 왜소한 야당이 있었던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정당 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며 양당제를 거쳐 다당제로 발전하고 있다. 북한은 2017년 현재까지 수령독재 또는 1당 독재를 실시해오고 있다.
남한에서는 북한을 비난하기 위해 부정적인 의미로 1당 독재라는 말을 쓰지만 북한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정당화하며 미화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는 여러 계급이나 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의 다양성을 중시하고 다당제를 취하기 쉽다. 각 계층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정당도 필요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정당도 필요하다. 진보주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도 만들어지고 보수주의자들을 대변하기 위한 정당도 만들어진다. 환경보호를 위한 정당도 나오고 종교의 확장을 위한 정당도 나온다.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는 (자본가) 계급이 없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사회의 획일성을 중시하고 일당제를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계급계층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이 많이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궁극적으로 ‘노동자 천국’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을 대변하며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정당인 공산당이나 노동당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을 위한 정당은 있을 필요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 이른바 1당 독재를 긍정적으로 선전하거나 정당화하는 배경이다. 북한에는 정당이 3개가 있다. 남한에 잘 알려져 있는 <조선로동당> 말고 과거 남한의 <민주노동당>과 자매결연하고 교류했던 <조선사회민주당>도 있으며 천도교도들이 중심이 된 <천도교청우당>도 있다. <조선로동당>은 1945년 10월, <조선사회민주당>은 1945년 11월, <천도교청우당>은 1946년 2월 만들어졌다. 이렇듯 정당이 세 개나 있는데도 1당제라고 일컫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당이란 사전적 의미로 정치적 이념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명실상부한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집권(執權) 경험이나 수권(受權)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권을 잡아본 경험이 있거나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진정한 정당인 것이다. 북한엔 이러한 정당이 <조선로동당> 하나뿐이기 때문에 1당제라고 한다. 미국에서 대통령선거 때가 되면 전국적으로 100개 안팎의 정당이 출현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정권을 잡아보고 앞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은 민주당과 공화당 2개 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의 정당제도를 다당제라 하지 않고 양당제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3.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본(재산)’을 중시하는 경제 이념이다. 사유재산권이 핵심 가치다.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과정에서 시작되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전해왔다. 시장경제와 결합되는 순수자본주의, 즉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고 경제의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부터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역할이 커져 왔다. 이것이 수정자본주의다.
시장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정부의 개입이라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요소를 섞었다고 해서 혼합경제체제 (mixed economic system)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서나, 미국에서든 남한에서든, 순수한 자본주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자본주의는 수정되면서 발전해온 것이다. 요즘은 자본주의라는 말조차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생략한 채 시장경제라고 강조하거나 ‘시장민주주의(market democracy)’라고 부르기도 한다.
글/ 이제봉 교수(원광대 평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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