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 시론 "안(內)과 밖(外)'
서기원 시론 "안(內)과 밖(外)'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안이고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밖이다. 이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은 자신이지만, 이 안을 벗어나면 밖이고 타인이고, 더 나아가서는 적(適)이 되기도 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한 개인은 피부(또는 의복)을 경계로 하여 구분되는 안과 밖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과 밖은 생물학적 개인을 전제로 할 때만 그 구분이 가능할 뿐이다.
한 사회는 이러한 생물학적 개인이 모여서 가족을 이루고 집단을 이루며 공동체를 이루고 국가를 형성한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은 오래 전부터 가족을 단위로 해서 밖을 마주해 왔고, 이 가족이 개인을 대표하기도 한다. 한국어에서 ‘우리’라는 말은 이러한 가족 공동체적 정체성의 단위를 잘 말해 준다.
이와는 달리 서양 전통에서는 가족 보다는 폴리스(polis) 혹은 폴리스보다 작은 성벽 안의 성곽 주민을 단위로 살아왔다. 이들에게서 안과 밖의 경계는 한국의 가족보다는 더 넓다. 그들은 가족을 넘어 부족 혹은 종족을 단위로 해서 살아왔다. 유대인들 또한 가족보다는 큰 부족을 단위로 해서 살아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소규모 가족 단위를 경계로 해서 바깥세상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 공동체와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자신이 살고 있는 소규모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곧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안의 일이 된다.
이러한 두 가지 삶의 방식은 국가 및 정치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성곽을 단위로 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은 성곽의 안에 있는 사람을 가족처럼 여긴다. 비록 피를 나눈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하더라도, 성곽 밖에 있는 사람이 성곽 안에 있는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게 되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이들은 연대를 바탕으로 하여 소규모 공동체를 민주주의적 국가로 발전시켰다. 이들에게 연설과 설득이 중요하고, 이를 토대로 공동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족을 단위로 해서 살아온 가족 중심의 국가는 비록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프로그램이 있어도, 자주 가족 이기주의에 빠져 보다 보편적인 공동체 형성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 것들은 바로 공공성 개념의 약화이다. 자신의 살고 있는 집 주변은 자신의 가족의 영역 가운데 들어가는 안(內)을 형성하지만, 이 영역 밖으로 나가면 그것은 자신(의 가족)과 관계없는 밖(外)이 된다. 공중화장실이나 공공도서관 및 여러 가지 공공시설은 나의 것으로 지각될 수 있는 안의 영역 밖이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는 것이 된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치가들이 여러 가지 정책 공약을 내세워도 그것이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치가를 선택하는 기준은 자주 그 정치가가 나의 가족이 살고 있는 영역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에 달려있다. 이것은 가족이기주의적인 ‘우리’의 안(內)으로 해서 밖(外)을 대하는 전형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가들은 자주 이러한 가족이기주의에 근거하여 자신이 속한 정당을 이익 결사체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권을 잡아 권력을 나누어 그들이 만든 ‘우리’의 이익을 공유 하고자 한다.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 주변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자신의 가족임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가족의 범위를 엄청나게 확대한 것이다. 오늘날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교회가 비판을 받는 여러 이유가운데 하나도 바로 예수의 이 가족정신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자신들끼리는 서로 잘 사랑하고, 잘 대해 주지만,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관심도 없고, 배타적으로 대우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교회가 세상 ‘밖’을 향해 하는 좋은 일도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바깥’을 끊임없이 ‘안’으로 들여와 환대의 식탁에 초대하는 일일 것이다. 보다 넓은 ‘우리’를 만들어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어 가는 일일 것이다. 정치가도 또한 자신의 안(內)쪽에 국민 전체의 이익을 포섭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글/서 기 원(본지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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