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의 '귀향서사(歸鄕敍事)'
귀향서사(歸鄕敍事)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유명을 달리하다’는 이름이 있는 곳을 달리 했다는 말이다. 이외에도 죽음과 관련한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다. ‘서거하다’, ‘운명하시다’ 등도 있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자주 쓰는 말이 ‘돌아가셨다’이다. ‘돌아 가셨다’는 의미는 어디론가 본래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 가셨다는 의미를 가진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보면, 이 말은 조상들이 계시는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제 죽음과 동시에 조상들과 더불어 후손들에게 제사를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생각의 기초에는 이원적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이 세상에서의 삶과 저 세상에서의 삶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원래 저 세상에서 잠시 이 세상에 왔다가, 원래 있었던 세상으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죽음은 고향으로의 돌아감 즉 귀향(歸鄕)에 해당한다.
플라톤의 죽음 이해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플라톤은 인간이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영원한 이데아(idea)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이 세상에 들어와 육체를 입게 됨으로써 이데아의 세계를 망각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배워서 알았던 것들을 다시 상기(anamnesis)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어로 진리를 뜻하는 아레테이아(aletheia)라는 말에 잘 표현된다. 이 말은 레테(lethe)의 강을 건너오면서 망각하기 이전의 비(非)망각(a-letheia)의 세계를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진리란 이데아의 세계를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플라톤 및 그리스적 세계관에서의 죽음도 이원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삶이 따로 있다. 죽음이란 다시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즉 귀향(歸鄕)이다.
이외에도 중국의 전통에서 공자나 맹자가 이상으로 삼았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향서사가 있다. 공자는 맹자는 전설의 임금 요·순 시대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였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시대를 본 받아 자신들의 살던 당시의 혼탁한 시대를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였다. 공자와 맹자가 볼 때 이때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기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당시는 그렇지 못하다고 보았다.
임금은 백성을 위한다고 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여 국가의 이익만을 취하는 부국강병책만이 유일한 정책의 대안이었던 시대 한 복판에서 공자와 맹자는 인(仁)을 이야기하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이야기 하며, 의(義)를 이야기 하였다. 이들은 그 시대를 요·순 시대로 되돌려 보고자 하였다.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새 하늘과 새 땅도 잃었던 에던 동산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귀향서사이고, 칼 마르크스의 원시공산사회도 마찬가지로 귀향서사이다.
귀향서사의 핵심은 고향으로 돌아감이다. 그렇다면 고향이란 어디에 있는가? 고향이 없는 사람은 고향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향’이라는 단어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고향’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고향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시절의 고통과 어려움과 함께 좋았던 과거를 떠올린다. 물론 현재의 삶의 환경에 따라 고향의 추억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고향은 푸근하고 좋았던 시절, 마치 어머니 배 속과도 같은 아늑한 이미지를 지닌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자연과 일체를 이루며 살았다. 자연과 인간의 문명의 분리가 크지 않았던 시절, 인간은 자연이 고향인지 몰랐다. 그런데 인간이 점차 문명을 이루어 자연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고향으로서의 자연을 그리워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쉬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종교, 철학, 문학, 역사 등 인간 문화의 모든 기제들이 귀향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인간 보편의 심리를 반영한다. 마치 연어가 물길을 거슬러 태어난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아늑한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고향은 이미 과거이고, 나는 이미 고향에서 한 참이나 떠나와 있기 때문이다. 고향은 이제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이 향수는 고단한 현재의 삶을 잠시 멈추고, 재충전하게 해준다. 또한 나의 잃었던 과거를 다시 기억해 내고는 현재의 나를 다시 이해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날(Home coming day)은 우리의 원래의 고향(집)이 어디 있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날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의 삶에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날이기도 하다. 정지용의 시(詩) ‘향수’가 떠오른다.
글/ 서기원(의정부 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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