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세중의 '박정권은 아직도 촛불의 힘을 모르고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한 무세중 소장
무세중의 '박정권은 아직도 촛불의 힘을 모르고 있다'
단순히 말해 촛불은 불 가운데 아주 미미한 꺼지기 쉬운 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촛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갖 화려하고 휘황찬란하고 강력한 불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불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모든 불은 촛불에서 시작하여 촛불에서 끝난다. 촛불은 마음의 불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은 불가능할 정도로 불붙이기가 어렵고 또한 한번 마음의 불이 붙으면 역사를 바꿀 정도로 그 힘이 막강하다.
빛 밝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라 하여 대한민국 중심을 광화문(光化門)이라 하지 않은가. 그 뜻 깊은 광화문 안으로 들어가 국민의 마음을 모아 촛불을 밝히고 역사를 밝힌다. 우리의 역사가 반만년이 넘도록 온갖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지속되어 왔고 나라를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도록 외래 침략과 전쟁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희생되어 갔어도 오늘날처럼 광화문을 중심으로 234만 명이나 되는 시민이 집결되어 촛불을 밝힌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촛불을 밝히는 연유를 생각해 보자.
닭을 생산하는 양계장의 공간을 들여다보면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목만 내놓고 한 뼘도 안 되는 비위생적 환경에서 옴짝달싹도 못한 채 항생제 투성이로 범벅된 닭 모이를 쪼아 먹으며 발악하는 닭들을 보게 된다. 우리의 삶도 같은 맥락에서 목숨만 연명하며 겨우 몇 푼으로 유지하는 우리들의 몸속에 어두움이 가득차서 촛불이라도 켜고 닭이 아닌 인간으로서 소통하는 생명체이고자 이토록 천민자본주의 말로를 손바닥만 한 폐쇄적 공간에서 마음의 불을 밝히고자 하는 저항의 촛불 심정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희망의 촛불을 밝히고 촛불의 마음을 나누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그런 심정은 3백여 명의 어린 백성들의 모진 생명들을 바다 속에 생매장했고, 반드시 꼭 성사시키지 않고도 해결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핵폭탄에 비유되는 사드를 국민들의 동의 없이 설치 하고자 한다던가, 아니 죽기살판으로 통일의 맥을 이어온 개성 공단을 사전 합의도 없이 철수 시킨다던가, 급기야는 최순실 국기 농간에 불의에 항거하는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세계 그 어느 역사에도 수 백 만명이 축제의 모습으로 평화 집회와 행진을 하는 나라는 없었다. 자기 몸치장밖에 모르는 무심한 대통령, 한나라의 수장이 일개 아줌마 여인에 의해 놀아난 한심한 대통령, 그녀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끝나고 나면 조용히 쓰레기를 치우고 조용히 사라지는 시민들. 촛불 집회에서 끌려 간 사람 없고 다친 사람 없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절차의 민주 행진. 외신들은 리더가 없고 폭력이 없고 선동이 없는 3무(無)의 조용하고 평화적인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을 저마다 의아해 할 정도로 지켜보며 감탄해하며 보도 하였다.
그렇다면 그 촛불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민주의식 혁명의 불꽃으로 촛불 행진을 보는 것이다. 봉건주의 시대, 양반 귀족 독주의 시대 반민주 독재 정치의 마수, 굴욕의 사대주의의 망령, 무능부패 독선의 박근혜 정권이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못 붙인다는 민주 시민 스스로의 민주 역사의 의식 맥락에서 영원한 한민족 촛불의 위대성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아직도 박근혜와 그녀를 쫓는 무리들은 위대한 촛불의 힘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두고 보지만 민주 정권이 바로 설 때까지 촛불은 우리 눈앞에서 우리 머리 위에서 그리고 우리의 뒤에서 우리의 갈 길을 밝히며 촛불을 든 민주 시민들은 혁명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진보해 나갈 것이다. 세월의 엄동설한에 썩어 문드러진 어두운 집권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핵폭탄보다 무서운 혁명의 촛불을 들고 나라가 밝아 질 때 까지 촛불의 빛으로 나갈 것이다. 이 아니 무섭지 않은가. 글/ 무세중(한철학 연구소 소장. 통일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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