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세중의 시론 "현대판 개, 돼지 노비(奴婢)들"
무세중의 시론 "현대판 개, 돼지 노비(奴婢)들"
경향신문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 기획관에 대해 파면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처음 TV로 보았을 때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하였고, 지상의 핵폭탄에 맞먹는 철퇴를 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역설적으로 나향욱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필자의 전 인생을 통해서 언제나 어디서나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는 것은 백성을 개, 돼지로 보는 권력가들의 인식이. 민(民)자가 붙어 있는 곳은 그 모두가 쌍놈이고, 그렇게 취급하여 왔고, 취급당했고, 개, 돼지보다 못한 밥버러지 개새끼 돼지새끼로 아무거나 먹여주고 아무데나 재워주면 그게 그들이 베푼 천국이라고 여겨왔던 양반님네
반상 계급은 역사 이래로 그들을 인간이하 노비(奴婢)로 여겨왔고 오늘날에는 이 거대한 문명사회의 수천만 개의 고층 빌딩 아파트들, 수만리의 아스팔트 건축 공사, 수천만의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일벌레 노동자들을 개, 돼지만도 못한 놈의 민중으로, 대부분의 비정규 노동자로 푸대접 하고 있음에 그의 발언은 취중에 뱉은 소리라 할지라도 정수를 찌른 올바른 지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이 고등교육 기획자의 입에서 나온 개, 돼지 발언이라니 탄성을 아니 부를 수 없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인권을 최상으로 표하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는 용납될 수 도 없지만 우리가 항상 느끼고 취급당해 온 처지라 하여도 아무리 거지같은 사람들이라도 스스로를 개돼지로 비유할 순 없지 않은가? 만약에 그가 그런 말을 안했더라면 그냥 쉽게 묻혀버리고 말았을 말이었다. 매일 시시각각 개, 돼지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최저 임금의 사람들, 죽어라 일을 해도 삶이 편하지 않아 나날이 죽어버리고 싶은 가난한 가장들에게는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 핵폭탄 같은 죽음의 말이 아니던가
6~70년대 끼니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안 그랬는데 없어도 개, 돼지만도 못하지 않았는데 지금 GNP 3만 불이 넘는다는 최고로 잘사는 시대라는데 민중은 아직도 개, 돼지보다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오만방자한 관료가 다름 아닌 교육 정책 기획관이라니 나는 그가 그런 말을 해서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잘 끄집어 낸 우리나라 관료들의 민중관 이었음을 통감하는 바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 하기위해 조선 총독부에서는 수 십 년 동안 조선인들의 생활 양상을 파헤치고 조선인들의 신분 조사를 감행하였던 적이 있었다. 조선을 샅샅이 뒤져서 내놓은 조선인의 신분 조사에서 양반은 8%, 노비(奴婢)가 60%, 나머지가 중인으로서 양반과 노비 중간 계급 20%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노비(奴婢)란 남자 노예의 신분을 노(奴), 여자 신분의 노예를 비(婢)라 하였다.
노비(奴婢)는 성이 없고 가족을 이룰 수 없었으며 양반들의 호적 단자에 개, 돼지 몇 마리 있는 것과 비교하여 사고파는 물건처럼 취급당하여 왔음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1971년 <동아 민속예술원>을 설립한 후 민족 예술의 현장을 답사하고 광대(廣大)를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은 극심한 반상 지배 계급의 횡포가 수백 년을 지속하면서 양반과 상놈의 차이가 사람과 개, 돼지 차이만큼 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비 노예 쌍놈은 함부로 맞아죽고 굶어죽고 전쟁터에 내몰려 죽었던 역사를 뼈아프게 느낀 바 있었는데, 교육부 고등기획 정책관의 개, 돼지 한마디로 과거의 횡포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음이 들어났으며, 아직도 민중·백성·인민에 대한 권력자 관료들의 비인간적인 계급차별 인식이 암암리에 잠재되어 있었음을 본다. 같은 역사와 전통, 같은 혈맥, 같은 이념으로 수 천 년을 함께 살아온 피 같고 눈물 같은 제 형제자매들인데도 서로 할퀴고 있다.
백성이 하늘이다 국민이 하늘이다 하면서 국민이 말 안 듣는다고 욕을 하는 소리가 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윗분들이 하라면 하는 것이지 무슨 잔말이 그리 많은가 하듯이 표독스럽게 잔학하게 철면피하게 내뱉는 소리.
우리는 아직도 과거 노비 쌍것들 취급하여온 전통(?)을 현대에도 계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현대판 개, 돼지 노비 신세가 바뀌지 않고 있다. 국민의 동의 없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박대통령의 국민 인식이 바로 그렇다. 오늘 저녁은 개고기로 여름철 보양식을 할까 아니면 돼지고기로 배를 채울까 노비가 노비를 먹어보자. 글/무세중(한철학 연구소 소장.통일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