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의 축제 이전(ante-festum)과 이후(post-festum)
서기원 목사 컬럼
축제 이전(ante-festum)과 이후(post-festum)
축제를 뜻하는 영어의 fest와 festival은 라틴어의 fest에서 유래한다. 이 말에 따라 학자들은 축제이전과 축제 이후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이러한 구분은 우리 주변을 이해하는데 좋은 틀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크게 보아 축제 이전과 이후 그리고 그 사이의 한 지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제 이전의 정서는 긴장감, 기대, 흥분, 충동이 지배한다. 축제 전에는 사람들이 희망과 기대에 가득 차 있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고 삶이 매우 역동적으로 된다. 이와는 달리 축제 이후에는 나른함, 권태, 허무, 회상, 반성, 후회 등의 정서가 지배한다. 이때 사람들은 희망에 가득 차 있기 보다는 매우 정적이다. 차분하게 축제를 회상하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크게 보아 축제 이전에 사람들은 감정적이다. 이와는 달리 축제 후에는 이성적으로 된다.
성향에 따라 축제 이전의 긴장감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축제의 긴장감 보다는 나른한 오후처럼 편안하게 정적인 상태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젊은이들이 축제 이전의 분위기에 들떠 있다고 한다면, 노년은 주로 축제 이후의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노년은 자주 과거를 회상하고, 침착하게 냉정하게 주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도박과 모험을 즐기며 인생의 즐거움과 역동적인 측면을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들이나 학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축제의 감정 보다는 나른한 오후의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가지 종류의 삶과 두 가지 종류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철학자 니체는 서양의 지배적인 철학과 학문 전통을 아폴론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와는 대립적인 방향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 디오니소스는 제도나 질서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니체에 따르면 서구의 학문은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낮게 평가한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 욕망과 감정에 지배되어 살아가고, 가끔 이성적인데, 서구의 전통은 거꾸로 인간의 이성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인간의 욕망이나 감정을 절제할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서구의 지배적인 가치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억눌려 왔던 욕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욕망과 충동에 따라 행동해야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애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결합하는 과정을 축제 이전에 비유할 수 있다면, 결합 이후는 축제 이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가족이 모이는 결혼식 전까지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긴장과 기대 그리고 희망에 부푼 삶이 이어지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서부터 긴장이 점차 사라지게 되고, 처음의 열정은 점차 사그라져 간다. 이후에는 서로의 사랑도 있지만, 가족들과의 관계와 사회적 의무 등이 주어진다. 때로 사회가 이를 강요하기도 한다.
이른바 ‘사람 노릇’이라는 이름아래 젊은이들을 길들이려 한다. 이러한 것과 나란히 두 남녀의 사랑도 갑작스럽게 권태와 허무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권태기이니 하는 말들도 나오고,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나올 수 있다. 삶은 이렇게 축제 이전과 이후의 언저리에서 지속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다른 축제를 만들어 낸다. 돌잔치, 결혼 1주년, 2주년 등등.
어쩌면 우리는 축제를 기점으로 해서 즐거움과 우울함을 번갈아 경험하는 조울증 환자의 긴장상태를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축제 없이 살 수 없다. 축제 이전에는 축제 이전대로 그 흥분의 상태를 알뜰하게 즐기며 살아가고, 축제가 끝나면 끝난 순간부터 그 허무와 권태를 살아낼 일이며, 또 이후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여 살아갈 일이다.
축제 이전의 긴장과 축제 이후의 반성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매우 무미건조할 것이다. 꽃이 만발하는 계절, 자연과 더불어 인간 삶에도 축제가 한창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길일을 정하며 결혼식을 올리는 계절이 왔다. 모두가 행복한 봄 소풍의 축제를 한껏 누리기를 기원한다. 서 기 원(의정부 의료원 원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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