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주의 기자수첩, 학력(學歷)보다 학력(學力)이 우선되는 사회
현성주 기자수첩
학력(學歷)보다 학력(學力)이 우선되는 사회
학력(學歷)의 사전적 의미는 ‘수학(修學)한 이력’이다. 즉 어느 단계의 학교를 졸업했느냐다. 물론 좋은 학력(學歷)을 가지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학력(學力)을 쌓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학력(學力)’은 한글로는 ‘학력(學歷)’과 똑같이 표기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지식(知識)은 지혜(智慧)와 구별된다. 과학적 지식으로 대표되는 소위 이론적 지식은 아무리 쌓고 모아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해답을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이런 것처럼 아무리 좋은 학력(學歷)을 가져도 학력(學力)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개인의 이력인 학력(學歷)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좋은 대학 졸업장은 취업의 전제 조건이었고, 명문대학의 입학은 장래를 보장받기도 했던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식노동시대인 정보화사회에서는 학력(學歷)이 점점 약해지고 학력(學力)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은 명민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 정도만 졸업한 사람은 아예 무시당하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무지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학력(學歷)과 학력(學力)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는 모순이자 병폐며 편견이 가득한 곳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성공의 입지를 쌓은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내세울만한 학력(學歷)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컴퓨터를 통해 세계역사를 새롭게 쓰도록 개척한 마이크로 소프트사 회장 빌 게이츠도 하버드대학을 ‘그냥’ 졸업했으면 어느 대기업의 평범한 사원으로 근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학력(學歷) 대신 학력(學力)을 선택했었다. 그리고 그는 세계 최고의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은 초등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學歷)이고,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도 중학교 중퇴가 학력(學歷)의 전부다. 미국의 자동차 왕이라 불리는 포드, 일본의 마쓰시다전기회사를 창립한 마쓰시다 고노스케 등도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學歷)이다. 일본의 혼다그룹을 창립한 혼다 소이치로는 아예 정규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무학력자이다.
앞으로 2~3년만 지나면 대학의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많아진다고 한다. 교육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대학교육은 보편화되어서 성적이 부족해서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경우는 있어도 아예 대학에 못 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을 간다는 관성의 논리가 아니라 왜 무엇을 하기 위하여 대학에 갈 것인가에 대한 논리가 전개되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슈바이처 박사는 성공적인 자녀 교육 세 가지에 대하여 첫째는 부모의 본보기요, 둘째 역시 부모의 본보기요, 셋째도 부모의 본보기라 했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는 자녀에게 오히려 부담이 된다. 부모가 자신이 하고 있는 현재의 일과 직업에 대하여 보람을 가지고 만족하고 행복해 할 때 우리의 자녀들도 자신의 직업을 아름답게 선택하게 된다. 그만큼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자식들이 행복하고 우리 사회가 밝아지는 것은 자식들에게 너무 많은 학력(學歷)보다는 진지하고 부지런한 학력(學力)을 부모들이 모범을 보이고 자녀들 역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학력(學歷)을 우선시 하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고, 제대로 성숙된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학력(學歷)보다는 학력(學力)을 중시하는 사회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적어도 (學力)과는 무관하게 학력(學歷)만을 갖춘 사람보다 학력(學歷)과는 무관하게 학력(學力)을 갖춘 사람을 더 알아주고 대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성주 기자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