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교수의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과정과 결과(1)'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과정과 결과(1)
최근 경색된 남북문제의 물꼬를 트기위해 다각도로 움직이고 있으나 핵 포기를 주장하는 남측과 핵 보유만이 살길이라는 북측의 입장이 맞서 남북관계는 최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에 본고는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핵과 관련한 흐름을 통해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재봉교수가 남북평화재단에 기고한 ‘법정 증언’의 글을 발췌 요약해 두 번에 나눠 게재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나서 2003년 4월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그전까지는 핵무기 개발이나 보유에 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며 애매하게 말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NCND (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을 폈다. 과거 미국이 남한 핵무기 배치에 대해 그랬듯. 핵무기가 있다고 하면 국제사회로부터 불법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핵무기가 없다고 하면 미국으로부터 무시나 폭격을 당하기 쉽기 때문에, 있어도 없는 체하고 없어도 있는 체했는데, 2003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적어도 예닐곱 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북한 협상 대표가 미국 대표에게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밝힌 2003년 4월 시점은 미국을 참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유엔 무기 사찰단이 2002년 11월부터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지고 나서 2003년 2월 "어떠한 대량파괴무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표했지만, 미국은 3월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말도 되지 않는 구실로 이라크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없다고 호소하는 이라크는 폭격하면서 핵무기가 있다고 큰소리치는 북한은 왜 가만두느냐는 국내외의 비난과 의혹에, 미국 정부는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는 궁색한 대답밖에 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핵무기를 만들지 못했으면 이미 미국의 침공을 받았으리라는 북한의 주장이 허풍이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나아가 북한은 2006년 10월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2009년 5월엔 2차, 2013년 2월엔 3차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2013년 4월 수정보충 된 헌법 서문에까지 "김정일 동지께서는 (중략) 우리 조국을 (중략)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만들었다고 명시하게 된 것이다. 북한은 2012년 12월 인공위성 발사에도 성공했다. 1998년 8월부터, 2006년 7월과 2009년 4월, 2012년 4월까지 4차례 시험 발사에 실패하다 5번 만에 성공한 것이다. 인공위성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즉 태평양도 건널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핵무기를 날려 보낼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소련은 1957년 10월 미국보다 먼저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라는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는데, 이때 미국인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스푸트니크 충격 (sputnik shock)'이라는 영어 단어까지 생겨났다.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라고 무시하던 '깡패 국가'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까지 갖게 되자, 미국이 '제2의 스푸트니크 충격'을 받았으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북미 협상>
미국이 처음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낌새채기 시작한 때는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2년 4월이었다. 미국의 감시위성이 평안북도 영변에 원자로로 보이는 물체가 세워지는 것을 촬영하면서부터. 1988년 6월 커다란 원자로가 건설되는 모습이 감시위성에 잡히면서,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에 미국은 1988년 12월부터 베이징에서 북한과 접촉하기 시작해, 1992년 1월엔 뉴욕에서 "최초의 북미 고위급 정치적 접촉"을 가졌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NPT)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긴장과 대결이 높아졌다. '제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었지만, 물밑 접촉은 계속되어 1993년 6월 북미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1994년 3월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북한 핵시설 사찰에 실패했다고 선언하자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쟁 불사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한반도를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로 몰아갔다. 미국의 전쟁 위협은 1994년 6월 러시아의 격렬한 미국 비난, 중국의 단호한 북한 지원 표명, 그리고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통한 중재 등으로 해소되었으며, 이는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협정으로 이어졌다. 이 협정의 핵심 내용은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시키는 대신, 미국이 대체 에너지를 공급하고 경수로를 제공하며 북한에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고 북한과 정치 및 경제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협정은 미국의 속임수와 다름없었다. 남한에서는 북한이 협정을 지키지 않아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약속을 더 먼저 더 많이 지키지 않은 쪽은 미국이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하리라 예상하고 경제 제재를 조금 풀며 경유만 제공했을 뿐, 경수로 건설과 관련해서는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될 때까지 8년 동안 경수로가 들어설 터를 고르는 일밖에 진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1999년 초에는 평안북도 금창리의 지하 시설이 핵무기 개발과 관련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북한을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었다. 1999년 5월 미국 대표단이 그곳을 사찰하여 의혹을 해소함으로써 북미 관계 개선에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이는 1999년 9월 북미 베를린 합의로 이어졌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당분간 중지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하고 국교정상화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이어서 1999년 10월엔 '페리 보고서'로 불리는 대북정책 제안이 발표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한반도의 냉전 체제 종식을 위한 3단계 목표를 포함하고 있다. 1단계 목표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자제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하며 서로 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2단계 목표는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수교 협상을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3단계 목표는 북한이 미국 및 일본과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남북한은 실질적인 통합으로 볼 수 있는 남북연합을 이룬다는 것이다.
2000년 10월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행정부 고위관리들을 만나 북미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두 나라는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체제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0년 11월 올브라이트 국무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 및 북미 정상회담을 합의했다.
그러나 바로 그달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2세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는 바람에 북미 사이의 관계는 더 진전될 수 없었다. 그는 2001년 1월 취임해 국정연설에서 북한, 이란, 이라크가 '악의 축'(Axis of Evil)을 이루고 있다며 미국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노라고 공언했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파괴무기를 가지려는 정권들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2002년 10월 켈리 미국 대통령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워싱턴에 돌아가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통한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미국이 악의적으로 왜곡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및 북·미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며 핵무기 개발을 무조건 먼저 포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리고 2002년 12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해마다 50만 톤씩 제공하던 중유를 더 이상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두 나라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의 자리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 포기해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하고,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먼저 해야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맞섰다. 또한 미국은 북한이 국제적 합의를 위반했기 때문에 두 나라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 국가들도 참여해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미국이 먼저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며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해왔기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보장만 해주면 풀릴 수 있으니 두 나라만 협상하면 된다고 대꾸했다. (다음호 계속) 글/ 이재봉 교수(원광대학교 평화학과, 하와이대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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