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 목사의 '기적(miracle)에 대하여'
서기원 목사의 '기적(miracle)에 대하여'
기적이 있을까? 사람들은 종종 일반적인 상식이나 자연법칙에 맞지 않는 특이한 일이 일어났을 때 기적을 이야기 한다. 13층에서 떨어 졌는데 다치지 않았다거나 혹은 우연히 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거나 하는 일들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기적의 원조는 아마 구약성서의 홍해 바다 갈라진 사건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해서 도망쳐 나왔는데 뒤에서는 이집트의 병정들이 쫓아오고, 앞은 홍해 바다인 상태의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때 그들은 바다가 갈라지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 기적 경험 이야기는 계속해서 후대에 전해졌다. 이 기적 체험 이야기는 야훼신앙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체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태초에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창세기에 나와 있지만, 사실상, 이것 보다 앞서 있었던 것은 홍해 바다가 갈라져서 ‘기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사건이다. 여기에서 물음이 생긴다. 정말 야훼가 역사적으로 단 한번 홍해 바다를 갈라놓았을까? 아니면, 우연히 일어난 자연 현상 가운데 하나였을까? 지금도 전라도 위도 등에 가면 밀물과 썰물에 따라 물리 갈라져 조그만 섬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우연히 일어난 자연 현상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의 도우심으로 체험하고 고백하게 된 것은 아닐까? 정말 중요한 것은 실제로 홍해 바다를 신이 갈랐는지 혹은 자연현상이 우연히 일어났는지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현상을 ‘기적’으로 체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우연히 자신이 있는 곳에는 소나기가 내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만 소나기가 있던 사건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셨다고 고백하는 일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자신에게만 비를 내리지 않았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기적에 대한 신앙은 이럴 경우, 지극이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처럼 보인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에 일어난 지진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거나, 수용소에서 죽어간 600만의 유대인이 예수를 부정해서 그런 고통을 당했다고 말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많은 신앙인들이 기적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한다. 신이 마치 자신만 사랑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기도만큼은 언제나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만 언제나 자연법칙을 위배하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신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는 분도 아니고, 똑같이 해를 비추시는 분도 아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질문도 생긴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상황에서도 침묵하셨을까? 왜 무수히 많은 순교자들이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침묵하셨을까?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만 자연법칙을 거슬러 기적을 주시는 분이시라면, 이 때 뭔가 보여주셨을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하나님은 이러한 기적을 보여주진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적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기적에 대한 신앙이다. 인생에서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체험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에게만 주어진 배타적 신앙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 『밀양』에도 나오지만, ‘비밀의 햇볕’이 땅에 공평하게 내리 쬔다. 자연과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기적’은 없다. 모든 것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만약 신이 계신다 해도 신은 자신이 창조한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신이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이 자연법칙을 ‘기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그렇게 믿어야만 힘겨운 자신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적’은 자연과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비약’이고 ‘우연’이다.
우연이란 자연법칙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인간의 착각일 수도 있다. 잘 생각해 보면, 해가 뜨고 생명이 소생하고 죽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다. 이를 신의 섭리 가운데서 이해할 때 우리는 편안하게 일에 몰두할 수 있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 수 있다. 자연과학자들에게는 해가 뜨고 생명의 소생과 죽음의 사건이 일상적인 반복이지만, 이를 기적으로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행복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 믿음이 소중한 것이다. 글/ 서 기 원(논설위원, 의정부 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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