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 목사의 시론 '적(敵)을 만드는 정치'
서기원 목사의 시론 '적(敵)을 만드는 정치'
자주 사람들은 소련의 붕괴 이유가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는 비효율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한 또 다른 이유는 적(敵)을 만드는 정치를 했기 때문이었다. 소련은 미국을 상대로 하여 군비경쟁을 하여, 경제에 쏟아 부어야 할 정치력을 군사력 증강에 소진함으로써 더 이상 회복되기 어려운 경제상태에 처하게 된 것이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적(敵)을 만드는 정치는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한 정치이기도 하다. 지금도 미국은 중국의 가상의 적국으로 상정하고,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일본의 군비증강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적(敵)을 만드는 정치는 자주 국민의 관심과 불만을 바깥 세상에 돌리게 함으로써 단합을 유도하여, 통치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독재자들이나 권력기반이 취약한 통치자는 자주 이러한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이때 국민들은 비록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당장 처한 위기의 극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기에, 내부의 모순을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통치자들은 자주 이러한 상황을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로 포장하여, 결속과 연대를 이끌어 낸다. 외부의 적(敵)이 존재함으로써 사람들은 결속한다. 이 결속의 윤활유가 애국주의의 이데올로기 기능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는 9.11테러 이후 애국자 법(法)에 기초하여 반(反)이슬람 정서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의 통치 기간을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현재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와 국내정치는 크게 이러한 적(敵)을 만들어 내는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서로를 적(敵)으로 규정하고, 잠재적으로 일본을 적(敵)으로 규정한 다음, 애국심에 호소하여 통치를 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반도는 아직도 8.15와 6.25라고 하는 역사적 사건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그 그림자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적(敵)을 만들어 내는 정치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은 권력기반이 취약한 통치자와 긴장과 갈등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소수의 집단에 제한될 뿐, 국민 대다수의 이익과는 상관이 없다. 권력기반이 취약하여 위기에 처한 통치자는 외부와 긴장과 갈등을 지렛대로 하여 무난하게 여론 지지율의 상승을 이어가며, 정권을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또한 이 틈새를 이용해서 안보라는 이름하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특수를 누린다. 보통 평상시에 국방비 예산 증액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남북 긴장가운데서, 적(敵)과 비교하여 취약한 상황을 나열한 다음, 국방비 예산 증액을 말하면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 북한의 선군(先軍)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의 위기 때만큼, 군사력의 필요성이 절박하게 다가오는 때도 없다. 경제력이 문제가 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 되어도, 이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고, 외부의 적(敵)을 만들어 현실의 문제를 도피하는 심리가 바로 적(敵)을 만들어 내는 정치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기제들이 이분법적인 도식에 따라 구획되고, 내편 아니면 적(敵)이 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사상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도 위축된다. 자유로운 의견이 교환되기 보다는, 적(敵)을 이롭게 하는가, 아니면 자국을 이롭게 하는가 하는 편향적인 이데올로기만 난무한다.
적(敵)을 만들어 내는 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경제주체들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물건을 사고팔고, 투자해야 하는데, 모두들 불안 심리에 의해서 몸을 사린다. 주식시장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간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안하기에 다시 불안을 극복한 통치자와 그 지지자들에 매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는 지도자가 있으면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그가 적(敵)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어디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대다수 국민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치자가 평화의 이성을 가동시켜야 한다.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정치, 적(敵)을 만들어 애국심에 호소하는 포퓰리즘(Populism)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 국민 대대수가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통치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 내수를 진작시키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왜 이미 잘 진행되어 왔던 경제협력의 길을 가지 않는가? 전임자가 해 놓은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독일이 통일을 할 수 있었던 밑거름은 전임자의 업적 가운데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전임자가 했던 좋은 결과는 계승하려는 합리적인 정신, 평화를 향한 지속적인 발걸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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