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주의 '제60회 현충일(顯忠日)을 맞이하여'
기자수첩
제60회 현충일(顯忠日)을 맞이하여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특히 6월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장병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하는 날로 2015년 올해 60회를 맞는다. 우리나라 현충일의 유래는 1950년에 발생한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나라의 수많은 장병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이를 추모하기 위해서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51년, 전사한 장병들을 위한 합동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사회 전반적인 환경이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졌고,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현충일로 공식적으로 개칭되었다. 행사는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행하는바 서울에서는 서울국립현충원(당시에는 국립묘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추모대상범위는 6·25전쟁에 전사한 국군에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미국의 현충일은 매년 5월의 네 번째 월요일이다. 처음에는 남북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무덤에 깃발과 꽃을 가져 다 놓은 날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모든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과 그 밖의 다른 경우에 사망한 모든 사람들을 함께 추모하는 날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6월 6일이 현충이 되었을까? 당연히 한국전쟁과 관련되어 6월에 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바쳤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망종’이라는 우리 고유의 풍습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망종(芒種)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망(芒)은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물을, 종(種)은 씨앗을 의미하며 벼나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 좋은 때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져왔다. 망종은 조상들이 벼, 보리를 수확 하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모내기 후 풍년이 들게 해주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날로, 농경사회에서는 예로부터 손(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신)이 없는 날로 여겨졌다. 보리가 익고 모내기가 새로 시작되는 날인 ‘망종’을 가장 좋은 날이라고 여겼던 만큼 조상 묘지에 떼를 입히고 성묘를 하는 등의 풍습도 있었다. 그래서 1956년 현충일 제정 당시 6월 25일에 일어난 전쟁을 상기하고 역사적인 풍습을 고려해 그 해의 망종일인 6월 6일을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의 순고한 정신을 추모 하는 기념일인 현충일로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6월 6일 현충일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전국 각지에서 거행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전쟁을 맞았고 이에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으며 백만 명에 달하는 일반 시민이 사망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베트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을 기억한다. “백 명의 베트콩 보다 한 명의 양민들을 살려라” 그리고 한국군에게는 “절대로 직선으로 걷지 말라. 식당이나 화장실로 갈 때에도 반드시 지그재그로 걷거나 달려라”라는 베트남 국민과 한국군에 대한 사랑은 지금도 베트남에서 회자되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채 장군은 사망 후 서울국립현충원의 장군 묘지에 묻힐 수 이었으나 굳이 자신과 함께 전선에서 생사를 같이 했던 사병들의 묘에 묻어달라는 유언으로 지금 그는 서울국립현충원 사병 묘에 안장되어 있다. 지금 북한의 광기어린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보면서 올해의 현충일은 더 남다른 의미가 있으며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선열들에게 삼가 명복을 빌어본다.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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