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기원 목사의 시론 '시(視)에서 청(聽)으로'
8.15 광복의 기쁨과 남북관계 해결의 실마리: 시(視)에서 청(聽)으로
8.15일 해방과 남북관계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리적 시공간(時空間)개념으로 보자면, 전혀 관계가 없다. 하지만 역사적인 의미의 인과관계를 따지면, 매우 관련이 깊다. 여기서 이 역사적 연관관계를 실증적 사실을 토대로 다 언급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역사적 의미만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가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조금 단순화 시켜 우리 안의 문제에서 찾자면, 그것은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하여 사색당쟁에 빠진 조선 시대의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 바깥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의 정치인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도토리 키 재기 싸움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8.15일의 광복의 기쁨을 기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욕의 이유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6.25일 남북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여기서도 그 전쟁의 배경을 사실에 입각하여 고증하여 다 언급할 수는 없다. 앞에서 조선 시대의 사색당쟁을 이야기 했지만, 여기서도 서로 다른 사상을 이해 포용하지 못하고, 적대시 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 더 주희의 성리학에 가까운가를 두고 싸우던 시대가 조선 시대였다면, 누가 더 새로운 나라의 정통성을 살릴 수 있을까를 두고 싸운 싸움이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지속된 남북한 정부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이 상황에서 중립적인 입장에 설 수 없다. 지금도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지점에서 조금이라도 멀다고 느끼면, 종북(從北)이니 종박(從朴)이니 하는 방식으로 날카롭게 대립각을 새운다. 이 현실이 조선 시대와 무엇이 다르랴? 혹자는 지금은 과거의 현실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반성이 없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최근 일본의 아베 담화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중국은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장차 미국인의 70%이상이 중국을 미국의 적대국이 될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잘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남북의 정치인들 모두는 이러한 주변 강국의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관심이 있다. 대립하는 두 세력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어느 쪽에 서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지기에 여념이 없다. 힘을 합쳐 한 목소리를 내고 미래를 준비해도 과연 그 의지대로 될 것인지가 불투명한 마당에 계속해서 서로 싸우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모습이 구한말 한반도의 모습과 그대로 닮아있다.
8.15와 6.25는 분열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8.15의 기쁨은 그 자체로 6.25와 연장선상에 있고, 8.15의 광복의 기쁨은 남북문제의 해결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분열된 우리의 모습이 이 두 사건의 핵심을 가로지르고 있다. 광복의 기쁨이 진정한 기쁨의 축제가 될 수 있으려면, 단결하여 남북관계의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서 주변 강국들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위안부 문제와 친일파 청산의 문제, 남북문제 모두를 잘 풀어나가려면, 통일된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 제시되어온 해법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자주 선(善)과악(惡)의 이분법에 근거해서 대립각을 세워왔다. 하지만 이 대립구도는 언제나 갈등을 유발해 왔다. 그러므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그 해법이란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해법이어야 한다. 즉 선(善)/악(惡)의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해법이어야 한다.
같은 역사를 또다시 반복할 것인가? 반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반성(反省)이란 거울을 비추어 보듯이 돌이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밖으로 향하던 시선(視線)에서 나를 향한 시선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시각 중심의 인식에 너무 초점을 두는 나머지 듣는데(聽)인색했다. 남의 결점이나 문제점을 보는 일에는 빠르지만, 나의 결점을 지적하는 남의 말을 듣는 데는 인색하다. 정치인들이여~ 너무 타인의 문제점만을 보는(視)쪽으로만 나가지 말고, 듣는(聽)자세를 가져보자. 이것이 현재의 위기와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틈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잃었던 빛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광복(光復)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서기원(본지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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