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커피 속에 빠져 보자
문화 에세이
내 삶의 가치와 희망이 녹아 있는 한 잔의 커피 속에 빠져 보자
전 세계인이 즐기는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를 통해 들어왔으며 고종황제가 처음 마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반인들은 1902년 러시아 공사 웨베르(Karl. Waeber)의 처남의 처형인 손탁(Sontag)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당시에는 커피를 가배차(珂琲茶), 가비차(加比茶) 또는 양탕(洋湯)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종황제는 지독한 가배차(커피) 마니아였다. 그런 고종이 커피 덕분에 목숨을 건지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1898년 고종황제는 식사를 마친 후 황태자(훗날 순종)와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몇 모금 마시던 그는 평소와 향이 다르다면서 곧바로 뱉어버렸다. 반면 아직 커피의 맛을 잘 알지 못했던 황태자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앙심을 품었던 김홍륙(金鴻陸 조선 후기의 역관(譯官). 아관파천 때 고종과 베베르 사이의 통역을 맡았다. 고종의 총애를 믿고 권세를 부리다가, 러시아와의 통상에서 거액을 착복하여 유배되었는데, 떠나기 직전 고종을 독살하려는 사건을 일으켜 유배지에서 사형되었다)이 커피에 아편을 타 암살을 시도했던 것. 커피 향을 제대로 구별할 정도로 남달랐던 고종황제의 커피사랑이 그를 살린 것이다.
커피에는 7가지 효능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졸음을 쫓기 위해서다. 커피가 음료로서 이용되게 된 것은 서기 1000년 전후, 아라비아의 회교사원에서였다. 수도사들이 졸음을 쫓기 위함이었다. 커피가 가진 각성효과로 인해 밤새 기도를 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던 수도승들에게 몹시 유용한 음료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부의 능률 향상, 다이어트 효과, 운동의 지구력 향상, 음주 후 숙취방지와 해소, 입 냄새 예방, 암 동맥경화 억제 등이다. 하지만 진짜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한 잔의 커피 속에 내 삶의 가치와 희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십자군 원정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커피는 유럽인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돼는 ‘생활’이 되어 버렸다. 그 이전까지 이슬람 이교도의 음료라는 이유로 억압되던 커피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예술의 대상으로 여겨질 만큼 관대해지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그 인기가 확산되기에 이른다. 결정적으로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에 세례를 내림으로써 이후 유럽 곳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1683년 문을 연 이래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에는 괴테, 카사노바, 바그너, 릴케, 니체 등 유명 명사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토론의 장을 벌린 곳이다.
계몽주의 선구자 볼테르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소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커피마니아가 아닌 '커피 폐인'이었다. 볼테르 외에도 루소 역시 커피 마니아였다. 프랑스 시민혁명 사상적 근간은 두 사람의 마신 커피 향기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인 베토벤은 아침마다 정확히 60알의 원두를 세어 커피를 추출해 마실 만큼 커피 맛에도 엄격했다고 한다.
손님이 오는 날에는 손님 수만큼 120개, 180개 등 일일이 커피 수를 세어 커피를 대접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커피는 대중음료가 아니었기에 커피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난했던 그였지만 늘 생활비에서 커피 값을 떼어 원두와 분쇄기를 구입했다. 어쩌면 베토벤은 그런 원두를 아침마다 한 알 한 알 세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커피는 달콤한 맛도 고소한 맛도 아닌 쓴맛이다. 사람들이 커피의 쓴 맛을 사랑하는 이유가 결코 매일이 달콤하지만은 않은 인생의 씁쓸함과 닮아서가 아닐까? 어느 시인은 내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지만/ 그리움에 갈증이 생기면/ 커피를 마시고 싶다/ 물은 입속을 촉촉하게 적셔 주지만/ 커피는 그리움에 스며들어/ 마음까지 감싸 준다/ 그리움에 갈증이 생기면/ 나는 커피를 마신다. 라고 노래했다. 오늘 내 삶의 가치와 희망이 녹아 있는 한 잔의 커피 속에 빠져 보자.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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