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 송년칼럼 '‘세월’과 세월 -靑馬의 해를 보내며'
최송림 송년칼럼 '세월’과 세월
靑馬의 해를 보내며
올 한해는 나라 안이 온통 ‘세월호’ 침몰참사로 비탄과 분노에 휩싸여 나라살림마저 휘청거렸을 정도다. 아직도 그 고통과 후폭풍은 끝나지 않고 마음속 깊이 상처로 파고들며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나는 지난 4월 대학로의 연극연습장에서 처음 침몰사고 소식을 듣고 남의 일처럼 여긴 죄부터 먼저 고백한다. 나의 교과서적인 첫 반응은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을 가리켜 우리사회의 단면을 압축한 민낯을 보는 것 같다고 흥분했다.
그 자리에서 우왕좌왕 움직이지 말고 지시를 기다려라, 그래놓고 도망친 승무원들의 방송만 철석같이 믿었다가 수장된 저 못다 핀 꽃들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들이야말로 우리의 정말 착한 우등학생들로서, 어른들의 교육과 말을 잘 들은 죄가 죽음이라면 과연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가? 원혼들이 어쩜 이 못된 어른들로 득실대는 험한 세상을 버리고 하늘나라에 먼저 갔다면… 글쎄, 적으나마 위로가 될까? 지금도 입만 열면 애국애족을 외치는 위정자나 사회지도급 인사 중 막상 전쟁이라도 터지면 국민을 버리고 자기 식구만 챙겨 미리 준비해둔 피난처를 찾아 외국으로 도망치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미꾸라지가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 얼빠진 사회구성원답게 뻔뻔스러운 어른으로서 직접적인 피해를 안 입었다는 얄궂은 안도감, 적어도 피해당사자가 아니라는, 그래서 금전적으로 나와는 아무런 문제도 상관도 없는 줄 알고 무심코 안도의 한숨까지 남몰래 내쉬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촌 한 가족, 하물며 나라 안에 일어난 국가적 비극에서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혼란에 빠진 어려움을 직 ‧ 간접적으로 톡톡히 경험할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사실 나는 그때 남쪽지방의 어느 야생차 축제 개막식 주제 세미뮤지컬을 준비 중이었다. 주최 측의 요구대로 어렵사리 대본을 완성해 내로라하는 중량급 간판배우를 비롯해 캐스팅도 끝나고 막 연습을 시작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주최 측의 통보가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세월호 비극으로 모든 야외축제 행사가 중단됐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실질상 우리 공연팀 제작자 역할을 도맡으며 곧 계약금이 입금된다는 말에 개인 사비로 진행비가 상당히 지출된 상태였다. 아무리 천재지변이라지만 주체 측에선 대본료의 일부라도 보내준다더니 아직도 깜깜 무소식이다. 나로선 현실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우리가 한 하늘 아래 함께 숨을 쉬며 사는 세상사엔 너나할 것 없이 남의 비극이 곧 나의 비극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서 ‘세월’과의 인연은 문청(文學靑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때 희곡 아닌 소설습작을 하면서 책상 앞 벽에다 ‘세월’이라고 커다랗게 장편제목만 써 붙여놓고 끝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월만 허송한 추억, 아니 부끄러움도 있다. 그 세월의 흉터가 덧나듯 이제 또 다시 나한테 아픔의 불씨로 부활된 느낌이다.
그러던 중 지난 가을에는 안산에서 청소년연극제 심사 위촉이 왔다. 세월호의 슬픔 한가운데를 헤쳐 나온 단원고도 참가했다. <버스를 놓치다>라는 작품인데, 그들은 멋진 무대와 앙상블로 열심히 땀 흘려 대상을 거머쥐었다. 나는 심사위원장으로서 참 알 수 없는 감회를 저미며 상을 받고 환호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대통령마저 대놓고 쌍욕을 할 정도로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선출직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바로 우리시대의 얼굴이요 거울이듯 세월호의 선장 역시도 우리시대의 초상화요, 어쩜 바로 나 얼굴은 아닐까? 그야 어쨌든 아무도 막을 수 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세월을 보석처럼 매만지며 ‘세월호’의 한 해를 뒤돌아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세월호라는 역사에 유실된 그 찾지 못한 몇 시신, 유가족들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유가족과 우리 모두에게 세월은 당분간 쉽사리 약이 될 것 같지 않다. 세월호야말로 2014년 오늘을 사는 우리네 상흔의 현주소임을 어쩌랴! 단원(檀園) 김홍도가 살아있다면 올해 갑오년 청마(靑馬)의 풍속도를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하다. 어느덧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을미년 새해를 맞아야 할 겨울의 한 복판이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