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원장의 '광복 70년, 그리고 태극기 -상-'
광복 70년, 그리고 태극기 -상-
올해로써 국토를 되찾은 국민으로,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빛 낸지 70년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단군 이래 가장 잘사는 시대’를 이룩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작은 성취의 자아도취 속에서 경기는 침체되고, 정체성 상실 속에서 자고 나면 끔찍하고 민망한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국가적 품격과 사회적 질서는 상실되고 오랜 전통 속에 합의된 우리만의 문화가치는 실종돼 매일 막장 연속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총체적 부실 사회’로 향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도무지 지나간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중국의 영토각축전이 우리를 사이에 두고 군비확장으로 치닫고 있다. 결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강대국의 사이에서 정교한 국익외교를 펴야 하는 부담이 크고,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펼쳐 보인 ‘통일대박’의 앞길은 오리무중이다. 나아가 세계적인 종교전과 환경파괴, 빈부 격차 또한 해결을 위하여 지구인의 일원으로 깊이 성찰해야 할 난제들이 가로 막고 있다.
매번 정치가와 지도층을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들에게서 큰 희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을 탓하며 시간을 보내며 다시 일어서서 달려 나갈 동력을 잃기 전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국가 위난 필부유책(國家危難 匹夫有責)’이다.
이럴 때 일수록 원시반본(原始反本)의 지혜로 근본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로 합일 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신인 ‘태극기와 애국가’가 있다. 천만 다행이다.
장영주 원장의 '광복 70년, 그리고 태극기 -상-'
*고려시대 1392년, 태극기 문양의 범종
영화 ‘국제시장’에는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벌떡 일어서서 태극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는 그랬다. 길가다가도 모두 부동자세로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서 모두 하나가 되었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 따지기 전에 지울 수 없는 우리네 한 시절의 문화이고 시대정신이었다.
그렇게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을 떨구고, 피 흘림을 불사하고 지금을 이룩해 오지 않았는가. 태극기는 1883년(고종 20)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고, 1948년부터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고종황제는 청나라의 마건충(馬建忠)이 청나라의 국기를 따라 조선의 국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자 분개하여 ‘청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진 태극원과 사괘를 그려 국기로 정한다.’는 명을 내렸다.(일본 일간지 ‘시사신보).
조선 조정에서는 태극기의 원형이 이미 준비 되어 있었던 것으로 수신사 일행은 8월 14일 고베(神戶)에 도착해 니시무라야(西村屋)에 숙박하면서 기(旗)를 게양한다. 이것이 국제 사회에 등장한 최초의 태극기로 통용 된다. 태극기는 바탕의 흰 천에 가장자리 네 모퉁이에 건곤감리의 괘가 있고 가운데 둥그런 양의라는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건곤감리는 하늘, 땅, 물과 불을 상징한다. 괘는 한민족의 선조인 ’태우의 환웅’( BC 3512년)의 막내아들 복희씨가 창안 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 태극기의 장구한 역사와 심오한 우주적 평화철학을 온 국민이 알아가면서 뿌리로부터 새롭게 자신을 알아가자. 그리하여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처럼 삶의 진리를 또 다시 현실에 구현하는 나라를 광복하자. 국토에는 또 다시 입춘이 돌아왔다. 올해는 진정으로 우리 태극기의 나라가 어김없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하길 빌고 또 빈다.
글/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 역사문화공원 원장>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