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결박 외교, 이대로 좋은가?
지난 7월 2일,일본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각의 의결에 대해 민족단체가 규탄집회하는 모습
평화 플러스
북핵결박 외교, 이대로 좋은가?
외교의 기본은 어떤 사안에 결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교에서는 ‘절대로’라는 말은 금기어입니다. ‘절대로’라는 말을 사용하는 순간 그 말에 결박되어 외교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을 보면 ‘북핵’이라는 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있는 양상입니다. 초반 설정이 잘못되었습니다. 연초의 통일대박 발언에서부터 드레스덴 선언까지 모든 것을 ‘북핵’과 연계시켰습니다. 물론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핵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을 고립시켜 북한의 핵을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구상과는 정반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는 대북 결박 외교가 스스로 북핵에 결박당하는 북핵 결박 외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박근혜 정권 ‘조건부 허용’>
7월 1일 아베 총리가 내각의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헌법상 허용 된다”는 정부 견해를 채택했습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가 군국주의의 부활의 서막임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일본이 공격당하지 않더라도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무력 공격을 받을 때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정한 요건’이란 참으로 주관적인, 고무줄 요건입니다. 일본의 존립이 위협당하고,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하고, 그것을 지켜낼 다른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합니다. 즉 행사 요건은 일본 정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2014년 7월 1일은 자국이 공격당했을 때에 한해 최소한의 방위를 한다는 전수방위 원칙과 전쟁과 무력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가 무력화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반응은 중국과 다릅니다. 중국의 훙레이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은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해쳐서도 안 되고,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침해해서도 안 된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한반도 안보와 우리의 국익의 영향에 미치는 사안은 우리의 요청과 동의가 없는 한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논평은 큰 차이를 갖습니다. 중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한국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국 정부의 논평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반대’ 입장인 반면, 한국 정부의 논평은 ‘조건부 허용’인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조건부 허용’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집단적 자위권이 미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부추겨 왔습니다. 아시아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정책을 추진하는 데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크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높여 중국에 대한 포위, 봉쇄 정책을 밀어붙여야 하는 이해관계 때문이었습니다.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반대하는 것은 한미동맹을 해치는 행위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반도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라는 조건을 갈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은 치명적인 후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2012년부터 한미일 삼국은 군사연습을 공동으로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2012년은 pivot to asia 정책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습니다. 2007년 이미 미국-일본-호주 삼각 동맹 체제를 구축한 미국은 한미일 동맹체제 구축을 위한 행보를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MOU를 체결하기로 합의한 바 있기도 합니다. 한미일간의 군사협력과 삼국동맹체제 구축의 명분이 바로 ‘북핵 위협 대응’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핵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북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었을 경우 미국과 일본은 공동의 군사적 행동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한반도 안보 불개입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허용’ 방침은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설령 한국 정부가 그런 상황에서 절대 불가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일 양국은 자신들의 계획을 밀어 붙일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허용을 추진한 이유가 거기에 있으니까요. 한반도 안보에 치명적인 후과를 미치게 될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자신의 무력함만을 확인할 뿐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한국 몸값 올리는 중국, 이를 거부하는 박근혜 정권>
얼마 전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시진핑 취임 이후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박근혜 정권은 외교적 성과로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즉 중국이 드디어 북한보다 한국을 더 중시하는 외교를 시작했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해석이 맞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입니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이유부터 살펴보지요. 박근혜 정권의 해석대로 중국이 북한보다 한국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시진핑 주석은 ‘북한 비핵화’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진핑은 끝내 그것을 거부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고수했습니다. 공동성명에도 한반도 비핵화로 명시되었지요. 시진핑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미국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미국은 pivot to asia를 표방하면서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 구축을 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도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지요.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중요해졌습니다. 따라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함으로써 ‘한국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국가이다. 그러나 대미 외교에 치중하지 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북핵에 결박되어 있다 보니 이같은 중국의 외교적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지요.
<북핵 결박 풀지 않으면 외교적 자율성 더욱 떨어져>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발상이 남북 관계 파탄 뿐 아니라 치명적인 외교적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핵 문제 해결은 외교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외교의 결과입니다. 외교의 결과가 되어야 할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설정함으로써 박근혜 정권은 북핵에 ‘자승자박’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렇게 결박된 상태에서 외교를 추진하다 보니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도 응당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한국의 몸값을 올리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북핵에 결박당해 있는 현 상황이 지속되는 한 박근혜 정권의 외교적 자율성은 더욱 하락할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구상대로 따라가는 결과만 초래할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6월 30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특별제안’을 발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날 특별제안에서 북한은 2.14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한 것을 재확인하면서 상호비방과 중상을 중단한 것을 다시 제의했습니다. 군사적 적대행위를 ‘선제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입장까지 피력했습니다.
북한의 특별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북한이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한다는 것은 ‘북한의 위협’ 역시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강력히 항의하고 저지하기 위한 외교적 역량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통일부는 북한의 제안이 나온 지 하루만에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라며 거부 입장을 밝혔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평화적 분위기 조성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거부 입장이 핵연계론에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북핵 결박 외교가 또 다시 좋은 기회를 날리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 악화를 초래하게 될 이같은 거부 입장은 결국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 개입의 명분을 주고 있습니다. 동북아 정세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는, 외교 무지의 발로입니다. 글/장창준(진보정책연구원)
*본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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