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의 '문명(文明)의 기준'
문명(文明)의 기준
오늘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문명(중국어로는 웬밍, 文明)이라는 단어는 ‘주역’에 나오는 말인데, 일본의 근대 사상가들이 영어의 Civilization이란 말을 번역하면서 차용한 말이다. 이 한자어의 뜻은 그대로 학문의 덕이 찬란하게 빛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문맹(文盲)이라는 단어와 비교하면 더 잘 들어온다. 즉 글자를 모르는 것과 글자를 알아서 밝은 세상에서 사는 것의 차이가 바로 문명이라는 말의 뜻이다. 영어의 Civilization는 시민(Civis) 또는 도시(Civitas)를 뜻하는 단어에서 그 어원을 가진다. 그래서 영어로 문명이란 단어는 시민화 혹은 도시화의 의미를 가진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도 발음을 다르지만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로 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두 문화에서 문명의 기준은 서로 다르다. 중국 전통에서 문명은 글자 혹은 학문이 밝히 드러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비해, 서양 전통에서는 시민들의 권리와 도시화가 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근대 이후의 역사를 보면, 서양은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 왔고, 시민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여 자본주의가 발전되었으며,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여 과학기술의 문명을 발전시켰다. 한 마디로 서양 전통에서 문명의 기준이란 시민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의 발전 그리고 도시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인도의 네루와 간디는 이러한 도도한 서양 근대 문명이 식민지 형태로 다가오자 자신의 오랜 문화적 전통에 기대어 한 나라의 문명의 기준은 개인의 인권보다도 앞서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 수의 정도에 있다고 보았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부자가 많이 있어도, 또 아무리 첨단의 과학 기술이 발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다수가 선하지 않고 나쁘다고 한다면, 그 사회를 문명사회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도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는 서양 근대문명의 도전 앞에서 서양의 문물을 따르는 것이 곧 문명(개화)로 나가는 바람직한 길로 여겨졌다.
일본이나 한국은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양화를 곧 문명화로 받아들이고 서양의 과학 기술은 받아들였지만, 서양에서 중요하게 여겨진 시민의 권리나 그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서양처럼 대도시가 많아지고 편리하고 이로운 도구(利器)가 많아지면 곧 서양의 문명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維新)을 바탕으로 하여 근대화를 이루었는데,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후 한국은 근대화를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아래 정부주도의 유신(維新)을 이루었다. 그런데 한국은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국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온 Civilization(文明) 과정을 빠른 시간 안에 이루려고 하다 보니 이른바 ‘압축 근대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압축 근대화’의 폐해는 참으로 크다. 한국경제는 서양의 기술을 안으로부터 배워 자생적인 기술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완제품만을 수입하여 그것의 혜택만을 누리려고 하여, 장기적으로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 방식은 부품이나 기계 등을 만들 수 있는 자생적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기회가 상실된 채,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위주의 재벌정책 탓에 외형적으로 수출이 늘고 국민소득은 늘었으나 그것의 낙수효과는 미미하여, 심각한 빈부격차를 가져왔다. 또 건설이나 기타 모든 분야에 있어 공사기간을 단출하여 이익을 창출하려고 하다 보니 부실공사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그 문제는 바로 인권 존중과 국가의 역할에 관한 서양 문명의 또 다른 측면의 망각에 있다. 서양 근대인들은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천부인권 사상을 바탕으로 개인과 국가 간의 관계를 체계화 하였다.
문명의 기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문명은 글(文)을 깨우쳐 문맹(文盲)아닌 밝은 세상(明)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고, 선한 다수가 존재 하는데서 찾을 수도 있다. 또 다수가 인식하고 있듯이 기술이 발전되고 대도시가 많아지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문명의 기준은 한 사회를 살고 있는 최약자가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지금 우리는 계급이 낮은 자가 군대에서 맞아서 죽고, 아직 성년이 안 된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대학생들이 부실공사로 인해 어느 날 갑가기 희생되어야 하는 ‘문명(Civilization,文明)’ 사회, 그리고 이러한 사실 조차도 글(文)을 통해 제대로 밝히 알 수 없는 눈 먼(盲) 세계 곧 유신(維新)의 세계에 살고 있다. 글/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 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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