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암 장영주 의 ‘명량’에서 빛을 건져 올리다'
국학칼럼
‘명량’에서 빛을 건져 올리다
영화 ‘명량’을 국민들이 맹렬하게 사랑하고 있다. 왜 이토록 온 국민이 그 사나운 물결을 그리도 사랑할까. 현재 우리의 대한민국의 혼란이 목숨을 걸고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진심의 리더십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다스리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다스림’이란 소수가 다수를 ‘누르고, 통제하고, 몰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 ‘다-스림’이란 말은 ‘다-살림’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모두를 다 살리기 위한 ‘지혜로운 배려’와 ‘엄중한 지킴’이 진심으로 하나 된 소통의 지휘력이 ‘다살(스)림’이다.
영화 속에서 맏아들 ‘회’의 “어떻게 독버섯처럼 번진 장졸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이순신 장군은 “먼저 죽어야겠지. 내가.” 라고 자신의 생명에 대한 ‘다스림’을 필승 전략의 기본으로 설정하신다. 쏜살같은 명량의 물길을 타고 막강하게 짓쳐올 적들에 대한 공포를 막사를 불태움으로써 육지론 돌아 갈 곳이 없음을 장졸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리곤 아직도 살려는 마음이 있다고, 아직도 목숨에 기댄다고 ‘필사즉생(必死卽生)’을 핏물처럼 뱉어내신다. 말씀대로 죽기로 명량의 물길에 앞장섰고 구사일생으로 이겼고, 나라를 구했다.
임진왜란을 바르게 보려면 전장의 두 주역의 유언을 살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1598년 8월 18일에 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탄의 유언’을 남긴다. "이슬처럼 태어나 이슬처럼 사라지는 이 목숨이여! 질풍노도 같은 이 세상은 꿈속의 꿈일 뿐이라!” 그가 자신의 야망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꿈속에 꿈을 꾸는’ 동안 조선의 산하와 백성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이유 없는 일본 수장의 폭력을 온몸으로 막아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약 100일 뒤인 11. 19일 노량의 찬 겨울 바다위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아끼던 부하 송희립의 부상에 놀라 일어다가 왜선의 저격수들의 총을 맞고 돌아가신다. "나는 도를 다하기 위하여 총을 맞은 것이다." (은봉야사 별록) 짧은 유언을 한 숨처럼 남긴 채 곧바로 돌아가신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기록은 장군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화급하게 현장을 찾아간 의병장 안방준(隱峰 安邦俊 1573~1654)이 탐문한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평생을 효(孝)를 다하려고 노력하셨고, 비록 임금에게 버림받았으나 쉬지 않고 충(忠)을 다하였고, 마지막 순간에 도(道)를 이루었다고 자인 하신다. 그러므로 영웅이 아니라 성웅이신 것이다. 장군의 삶은 개인의 야욕을 따른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밝고 높은 가치인 효충도(孝忠道)로 관통 된 삶이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다. 자신의 성도 잘 모르는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젊은 날 주군 ‘노부가나(織田信長, 1534~1582년)’의 몸종으로 시작하여 일본 100년의 내전을 마무리하고 일본통일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까지 점령하고 중국의 북경을 수도로 하려는 ‘꿈속의 꿈’을 꾸었지만 결국 이름 없는 조선의 장수 이순신의 밝고 큰 철학과 ‘필생즉사’의 기백 앞에서 헛된 꿈을 접어야 했다. 지금도 일본의 아베 수상을 비롯한 일본의 리더들은 도요토미의 헛된 ‘꿈속의 꿈’을 계속 꾸고 싶어 한다. 그러가 하면 꿈을 잃고 독버섯과도 같은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 주인의식을 상실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는 현실적인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우리 한민족의 본성을, 바로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회복하는 것이다. 현대는 지구인 모두가 명량이라는 물길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전체인류의 절체절명의 정세와 환경에 이르렀다. 효(孝)로서 ‘나의 집’을 살리고 충忠으로 ‘나라의 집’을 살리고 도(道)로서 ‘모두의 집인 지구촌’을 살리는 유일한 철학이 홍익인간이념이다. 이것만이 우리가 명량에서 살아남아 반드시 세계에 전해야 할 가치이다.
모든 인류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생명의 찬란한 빛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식민의 압제에서 벗어난 8월 15일을 독립기념일이라고 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회복한 광복절(光復節)이라고 부른다. 416년 전,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모두를 살리기 위한 한민족의 찬란한 빛을 가슴에 간직한 채, 인간의 광복을 위하여 돌아가셨기에 영원히 살아계신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것만이 인류의 영원한 생명이며 진정한 구원이다. 원암 장영주 (국학원 원장(대), 전국민족단체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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