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주 편집국장의 지독한 왕따 ‘팽형’
기자수첩
지독한 왕따 ‘팽형’
팽형(烹刑)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이 있다. 본래 이 팽형은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위왕의 측근에서 아부하며 선정을 베풀었다고 왕을 속인 아대부(阿大夫)라는 관리를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였다는 고사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죄인이 너무 뜨거워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인의 혀를 잘랐다고 한다. 이 정도로 너무 무서운 형벌이었다. 자형(煮刑) 혹은 팽아지형(烹阿之刑)之刑)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팽형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성종, 중종, 영조 때에 일부 탐관오리에 대한 팽형 시행의 논의가 있었으나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다. 다만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는 것보다 더 지독한 삶을 살도록 했다.
서울 광화문우체국 북쪽에 혜정교(惠政橋)라는 다리가 있었다. 조선시대 때 이 다리 위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를 벌주는 팽형 곧 끓는 가마솥 속에 죄인을 삶는 공개처형을 했다고 한다. 이 팽형 절차를 보면 혜정교 한 가운데에 임시로 높다란 부뚜막을 만들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큰 가마솥에 물을 붓고 아궁이에는 불을 땔 수 있도록 장작을 넣는다. 그 앞쪽에 천막을 치고, 포도대장이 앉으면 팽형이 시작된다. 그러나 진짜 팽형을 하는 건 아니고 죄인을 가마솥에 담고 솥뚜껑을 닫은 다음 구령에 따라 장작불을 지피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솥 속에 든 죄인은 그 순간부터 삶아져서 죽은 시체처럼 시늉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꺼낸 ‘살아있는 시체’를 가족들에게 넘기면 가족들은 미리 준비해간 칠성판에 이 ‘살아있는 시체’를 뉘여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격식대로 장례를 치른다. 이렇게 장례가 끝나면 죄인은 호적이나 족보에 죽은 사람이 되어 기록된다. 물론 먹고사는 일은 할 수 있고, 아이도 낳을 수 있지만 ‘살아있는 시체’의 아이는 태어나도 아비 없는 사생아가 된다. 살아있으되 산 사람이 아닌 팽형은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에게는 죽음과 같은 벌이라는 경고성 형벌이며 이로써 부정부패의 근원을 뿌리 뽑으려는 효과를 노린 형벌인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팽형을 선고 받으면 자결하거나 팽형을 받거나 두 가지 선택권을 죄인에게 준다. 이때 자결을 선택하면 나중에 신분 복권이 가능하지만 팽형을 선택하면 후에 억울함이 밝혀져도 복권, 명예회복은 절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팽형은 일종의 명예형이다. 죄인들은 팽형 이후 살아있는 송장 취급을 받아야 했다. 살아있어도 산 목숨이 아닌 형벌이 팽형인 것이다. 팽형을 받은 죄인은 주로 양반이었으며 받고 나서 주변 사람들은 그가 없는 듯 행동하는, 사회적 사형이었다. 그리고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당시의 양반이나 선비들은 굴욕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했다. 말 그대로 지독한 ‘왕따’를 스스로 견디지를 못하는 것이다.
요즘 이러한 조선시대의 팽형을 부활하자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악랄한 탐관오리보다 더한 관료나 정치인들에게 겨우 솜방망이 벌을 내리는 정부의 행태에 대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모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자는 괴상한 주장보다는 차라리 가마솥을 만들어 광화문 앞에 걸어둔다면 국민들 가슴이 얼마나 시원할까. 그리고 상석(上席)에 앉은 포도대장의 불호령에 따라 죄인을 끌어내 가마솥에 넣고 팽형에 처하는 이런 퍼포먼스는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줄 것이다. 아무튼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두고 비록 연극이라도 탐관오리를 벌하는 포도대장의 불호령을 들어보고 싶은 것이 요즘 우리 국민들 심정이다. 정치가 국민들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하니 오죽했으면 이런 팽형 같은 퍼포먼스가 생각이 날까? 하루라도 국민들의 마음 어루만지는 정치가 빨리 되어야 하는데.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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