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진짜’통일대박 준비해야”
평화 플러스
“분단 70년,‘진짜’통일대박 준비해야”
노벨수상자 오바마가 김정은 손잡아야
본고는 <통일뉴스>가 1970~80년대 대학교수로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1993년 김영삼 정부의 통일부총리, 2004년~2007년 노무현 정부의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활동한 한완상 선생(1936년생)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와 한반도상황,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길에 대한 고견을 정성희 통일뉴스 기획위원이 진행했다. 인터뷰는 지난 3월 28일 오후 4시 압구정동 선생 댁에서 했다. (편집자 주)
경북 포항에서 ‘쌍룡훈련’이라는 대규모 한미합동 북한상륙훈련이 전개되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방에서 북의 포사격 훈련과 남의 대응사격이 벌어졌다. 이런 긴장 상태에서 미국은 북에 ‘위험한 도발 중단’을, 중국은 ‘유관 당사국의 냉정과 절제’를 촉구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 해결, 민생인프라 건설, 동질성 회복의 ‘평화통일 기반 구축 3대 제안’을 내놨다. 북은 ‘반민족적 체제통일’을 추구한다며 민간교류협력조차 가로막으면서 ‘지원’, ‘공동번영’, ‘동질성 회복’이냐고 비난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계절의 봄은 왔으나, 민족의 봄은 멀기만 하다.
□ 정성희 소장 :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이번에 감기를 2주 앓아보니까 아 이제 내 건강의 한계가 오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번 독감은 지독했어요.
<분단 70년의 고통, 못 느끼는 사람들 많아 더 아프다>
□ 정정희 :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 한완상 : 내년이 분단 70주년이 되잖아요? 나이가 드니 분단 70년이 빚어낸 민족의 부당한 고통이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내가 살아온 기간이 일제시대와 분단시대이잖아요? 식민지가 끝나고 광복을 체험해야 하는데, 내 평생에 한 번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8.15기념식을 할 때마다 광복이요 해방을 맞은 것처럼 다들 기뻐하지만, 나는 한 번도 기쁜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더 쓰라린 마음, 해방되지 못한 아픔을 느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하네요. 내년이면, 분단 70년입니다. 혼란 5년, 열전 3년, 냉전 62년 엄청난 아픔을 겪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해요. 왜 이렇게 된 건지, 그 이유를 생각하면 더 화가 납니다. 분단의 유지 강화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냉전 근본주의자들이 남북 다 같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냉전 원리주의자들이 남과 북의 정권을 차지하고 있으면 불가피하게 남북관계는 어려워지니까요.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역설적으로 체제내의 권력기반은 강화됩니다. 이런 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요. 어떻게 이런 적대적 공생관계의 고리를 끊고 부당한 민족의 고통을 인식하고 극복해 나갈 건가 고민입니다. 요즘 주로 강연으로 소일하고 있는데, 이런 주제로 얘기합니다.
<젊은이들, 역사건망증을 치유하라>
어제도 서울대에서 강연했는데 어느 여학생이 놀라운 질문을 했어요. 선생님, 왜 북한과의 관계가 꼭 좋아야 합니까? 북한도 남한도 그냥 따로 살지 통일이 왜 그렇게 절박합니까?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 역사건망증에 심하게 걸렸구나. 쉬운 말로 한쪽 팔이 묶이고 한쪽 팔로만 권투시합을 해서 늘 져오다가 요즘 이기기 시작한다. 경제가 중진국, 문화 선진국, 정보 최선진국으로 올라가고 있다. 양쪽 팔을 다 사용하면 얼마나 큰 경쟁력을 가지겠는가, 문화민족으로서의 창의력을 전 세계에 떨치겠는가. 이런 거 아쉽지 않냐? 식민지 36년, 분단 70년이 억울하지도 않느냐? 라고 했어요. 그런데 젊은 학생들에게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거죠.
□ 정성희 : 제가 6.15 이전인 1999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축구대회에 참여하고 6.15 이후 2000년 10월 북측이 초청한 각계 인사 43인과 함께 방북한 적이 있습니다. 첫날 저녁 만찬장에서 사회를 맡아 "이 분이 통일부장관을 좀 더 오래하셨으면, 지금의 6.15시대가 훨씬 빨리 왔을 것"이라며 방북 단장이었던 선생님을 소개한 기억이 납니다만, 김영삼 정부 들어 1993년 2월부터 12월까지 짧게 부총리 겸 통일부장관을 하신지 21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개괄해주시지요.
<따뜻한 흐름과 차가운 흐름>
■ 한완상 : 최근 출판한 책 <한반도는 아프다>에 자세하게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다 얘기할 수는 없고요.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할 당시,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두 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흐름과 차가운 흐름이 그것인데요. 노태우 정부는 세계적 탈냉전 분위기에 적극 대응해 1988년 7.7선언 이후 교차승인을 추진하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 끌어냈습니다. 특히 1992년 지금의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의 전신인 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시켰습니다. 이건 대단한 결정이었어요. 당시 그레그 주한 미 대사가 한반도 상황을 잘 이해하고 대북관계 조정에 힘을 썼습니다. 그레그 대사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도 관계가 좋았거든요. 이런 따뜻한 흐름 속에도 차가운 흐름이 살아있었어요.
1992년 가을쯤으로 기억되는데, 미국이 1993년부터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한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는데, 작년에 그레그 전 미국대사가 방한해 대담하면서 한번 물어봤어요.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면서 당시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국방부장관이었고 나중에 아들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막강한 네오콘 실세였던 딕 체니가 바꾸었다는 거예요. 당시 노태우 정부 인사들은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있었고 그냥 미국 방침에 순응한 것 같아요. 이런 차가운 흐름을 노태우 정부의 냉전세력들이 고약하게 이용하려 했습니다. 92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되는 8차 남북고위급회담 과정에 대통령의 훈령을 조작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게 되니까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
당시 나는 김영삼 대선캠프 정책팀에 있으면서 이런 차가운 흐름을 걱정하다가 당선 이후 대통령 취임사 초안 작성팀을 맡았지요. 차가운 흐름이 새 정부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못을 박기 위해 취임사에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며 민족 당사자 원칙에서 모든 남북현안을 해결하자는 과감한 대북정책을 천명했습니다. 북쪽의 좋은 반응이 있었지요. 1993년 3월 2일 부총리 겸 통일부장관에 임명되어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법전 식으로 대응하면 민족이 서로 상대방을 병신으로 만듭니다. 남이 북보다 GDP 14배이고 정치적 인도적 힘이 훨씬 우세합니다. 북이 남을 한대 치더라도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포용정책, 햇볕정책을 취해야 합니다. 과거 군사정권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듣기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보다 구체화해서 대북정책 변화의 강력한 신호로 노태우 정부시절부터 이미 현안이 되었던 이인모 비전향장기수 북송 얘기를 꺼낸 거예요. 인도주의 차원에서 조건 없이 보내자고 진언했지요. 그런데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만, 93년 3월 11일 오후 이인모 씨 북송 허용을 발표한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3월 12일 오전 10시 북이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에 감동했다고 확인되었는데, 그렇다면 왜 팀스피리트 한미합동훈련 재개에 반발하는 북한 군부 강경세력을 관리하지 못했을까. 나는 그 때 아들 김정일에게 군사력 통제 권한을 넘긴 김 주석이 힘이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 되었어요.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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