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의 “분단 70년, ‘진짜’ 통일대박 준비해야(3)”
“분단 70년, ‘진짜’ 통일대박 준비해야(3)”
노벨수상자 오바마가 김정은 손잡아야
본고는 <통일뉴스>가 1970~80년대 대학교수로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1993년 김영삼 정부의 통일부총리, 2004년~2007년 노무현 정부의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활동한 한완상 선생(1936년생)을 찾아 1990년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와 한반도상황,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길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지난 호에 이어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지난호에 이어)
신뢰 얘기한 측이 먼저 상대가 신뢰할 수 있는 조치 취해야
□정성희 소장: 한미합동훈련 기간인데도 이산가족 상봉을 마쳤지만, 남의 정례화 회담 제안에 북이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반응입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에 북 핵 폐기 국제공조 입장을 취하고 기독교탈북자연합회 등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니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상호 비방 중단 합의 위반이라고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향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프로세스’가 북한으로부터 신뢰를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뢰를 얘기한 측에서 먼저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친구끼리도 그렇고 상거래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물며 민족문제인데. 상대방에게 먼저 신뢰를 보이라고 요구하는 ‘신뢰프로세스’이니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늘 이 시점에서 북이 남의 ‘신뢰프로세스’를 왜 불신하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 북한이 굉장히 중시하는 그간의 남북합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특히 남북정상간 합의, 즉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합의내용을 각론화, 프로그램화하여 진행하자고 회담을 제안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이런 제안이 없었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통일부가 10.4선언의 절반을 무효화했어요. 둘째, 국제사회에서 핵문제를 갖고 북한을 옥죄는 국제공조에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 모습도 북을 옥죄는 것이었죠.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합의도 안 지키면서 국제적 고립에 앞장선다고 보지 않겠어요? 신뢰가 생기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햄릿의 고뇌라도 보여야지요, 돈키호테의 확신이 아니라. 더구나 기독교 냉전 근본주의자들이 북이 매우 싫어하는 문구나 표현의 대북 비방 전단을 살포하니 신뢰가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 우리 국가는 대의, 즉 평화 화해 통일을 위해 어느 정도 관리할 능력이 있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어요. 대선에 댓글로 개입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왜 손 놓고 있는 겁니까? 최근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대표의 비료 지원 추진에도 당국이 가로막는 태도를 보였어요. 그래 가지고 북 당국이 신뢰하겠어요?
<일본 신 군국주의 막아내고 MD 편입 거부해야>
□ 정 소장: 재정위기를 겪는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을 승인하는 등 일본의 지위를 높여 동북아 패권을 강화하려 하면서 한국을 한, 미, 일 삼각 군사동맹으로 더욱 옥죄고 있습니다. 4월 23일경 방한하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약(TPP) 가입과 한, 일 군사정보협정을 강권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한국의 바람직한 대미 대중 대일 외교노선은 무엇일까요?
■ 한 전 통일부총리: 한일관계를 복원, 삼각동맹을 완성하기 위해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라는 오바마의 권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는데 앞장서고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이배 신조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제식민지 36년의 고통을 겪은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중국이 어떻게 보겠어요?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우리의 외교력을 동원해 미국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도록 집중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의 합법화가 만만치 않습니다. 만일 아베가 계속 추진한다면 일본의 뜻있는 정치인, 시민사회, 언론계 등과 협력해 막아내야 합니다. 환태평양 동반자협정(TPP) 가입은 우리에게 이익도 있고 손실도 있는데 아마도 이익보다 손실이 더 커겠지요. 그러나 미사일방어(MD)체제 참여는 우리에게 전적으로 손실만 있고 백해무익합니다. 더구나 전시작전통제권을 재연기하는 대가로 MD체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재정이 어려운 미국은 한국의 전작권 재 연기 요구를 방위비 절감의 호기로 삼겠지요. 그러나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한국의 이런 애걸복걸을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의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력만이 아니라 전략적 유연성, 즉 미국이 분쟁지역에 신속히 개입하는 기동군의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주한미군을 빼서 더 급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이니까요.
<자주평화통일은 대박, 흡수통일은 쪽박>
□정 소장: 노무현 정부는 균형외교를 표방했습니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어떤 외교, 어떤 경로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까?
■한 전 통일부총리: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는 조금 빨랐어요. 독자적 힘을 갖추지 못해 균형자 역할이 어려웠고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조정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가 2개입니다. 첫째,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막는 것입니다. 일본 군국주의 저지는 일본의 장기적 발전과 일본 국민에게도 이익이 되고 미국에게도 이익이 됩니다. 둘째,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강화하여 중미갈등, 즉 동아시아의 주요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외교노선을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전시작전통제권을 재연기해 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정부 안에 많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박론’이 자존심 있는 민족으로서의 자주외교를 보여주는 방향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면 북한도 우리의 외교를 높이 평가하고 신뢰할 겁니다. 이제 우리는 자주외교를 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가 있는 통일정책이라야 합니다. 지금 대박론은 평화가 없어요. 평화가 있는 통일로 들어서면 인구 7천만 이상의 엄청난 창의력을 가진 민족국가로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다음으로 당장 G5로 도약합니다. 이건 분명 대박이죠. 이를 위해서는 대박론이 과정 없는 결과만 강조해서도 안 되고, 또 대박을 나눠야 할 북한을 존중하고 함께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향후 대박론을 구체화한 정책을 수립할 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흡수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입니다. 지난 3월 26일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통일대박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주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충고했어요. 1993년 내가 통일부총리 할 때 한국을 방문한 독일 슈미트 전 총리가 우리를 본받지 마세요. 우리를 본받으면 큰 일 납니다. 지금 남한이 잘 살지만, 우리가 통일할 때 서독만큼 잘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통일할 때 동독은 공산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살았는데, 지금 북한은 가장 못 사는 나라 아닙니까, 라며 흡수통일의 엄청난 후유증을 설명했어요. 또 흡수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북에 급변사태가 일어나 정치와 행정의 공백이 생겨도 남한 이북5도위원회가 올라가 접수하는 상황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북한 내부는 말 할 것도 없고 중국과 러시아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해방 직후처럼 신탁통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아요. 또 북 급변사태 시 대규모 난민이 동해로 서해로, 만주 연해주 남한으로 오면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겨우 2만 명 이상의 탈북자 관리도 못하면서 수백만 난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가령 동해를 통해 50만 명이 일본으로 간다고 할 때, 지난 70년간 재일동포들에게 시민권도 주지 않는 일본이 어떤 대접을 할 것 같습니까? 흡수통일은 대재앙입니다. 대박을 나누어야 하는 상대를 존중하면서 평화가 있는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도 민주진보인사들까지 포괄하여 국민의견을 광범하게 수렴하고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수립,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자문기관으로 전락시키면 통일대박이 실패할 것입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오바마가 김정은 손잡고 빅딜해야>
□ 정 소장 : 북한체제의 안정성이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책기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한 전 통일부총리: 장성택사건 이후 북한에 위기가 올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종교사회학적으로 볼 때, 북한체제는 일종의 신정(神政)체제입니다. 외부 또는 내부의 위협이 생기면 더 결속하고 강화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장성택사건은 파벌간의 싸움이 아니라 책벌인 것 같고요. 처벌한 쪽이 더 강해져 김정은 체제는 더 단단해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김정은의 비전이 뭐냐.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벤치마킹하려는 것 같아요. 생김새도 비슷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고요. 할아버지가 생전에 인민들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수준으로 경제를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지요. 할아버지는 사상강국, 아버지는 군사강국이니 경제강국은 자기 몫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외관계를 안정시켜 경제발전으로 가야하는데, 핵문제가 불거져 막히는 것이죠. 핵을 가져야 미국의 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렛대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니고 미국만이 갖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만이 핵을 통한 군사적 억제력을 갖지 않도록 북한을 설득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미국이 진정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김정은을 악마화하지만 말고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합니다. 오바마가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긍지를 갖고 독수리가 참새의 손을 못 잡아줄 이유가 없습니다. 김정은의 손을 잡고 ‘경제강국을 만들려는 당신의 뜻을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핵무기를 동결하고 핵물질을 더 이상 만들지 말며, 특히 핵연료든 핵무기든 이전 확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 세 가지만 이행하면 당신이 요구하는 거 다 들어주겠다. 국교정상화 하겠다, 경제 금융 지원하겠다. 평화협정 체결하겠다.’고 해야 하는 겁니다.
국교정상화 했는데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할 이유가 뭡니까? 이미 2007년 10.4정상선언 4항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관련 당사국, 남북미 3자 또 남북중미 4자 간 협의를 계속 하자고 합의했어요. 이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왜 못합니까? 우리정부가 미국을 강력히 설득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전체의 복지와 경제의 지름길>
□정 소장 : 마지막으로 우리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지요.
■한 전 통일부총리 : 20세기 초반부터 오늘까지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얼마나 강대국에 의해 부당하게 시달리고 고통을 받았습니까?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지만, 한 번도 광복된 적도 없고 해방된 적도 없습니다. 이 아픔을 극복하고 진짜 해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통일대박론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국민들이 이 점을 깊이 인식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울은 북경, 모스크바와 화해했습니다. 그런데 왜 서울은 평양하고는 화해하지 못합니까? 내년이 분단70년입니다. 뭔가 이뤄져야 합니다. 진짜 대박이 와서 한반도 평화를 온 민족이 누리고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기를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남북관계가 후퇴하면 민주주의도 복지도 인권도 후퇴하게 됩니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 전체의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지름길입니다. 우리국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함께 노력하시리라 믿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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