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행복한 죽음'
생각해 봅시다
행복한 죽음
세상에서 만남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아내와 부부관계를 이루고, 자식과 부자관계를 맺고 스승과 사제관계를 맺으며 친구와 친구는 우정관계를 맺는다. 우리 인간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사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행복의 첫째는 나는 장가를 잘 갔다 또는 시집을 잘 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결혼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 한 평생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명예를 가졌고 세상을 흔드는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부부의 사랑과 믿음이 제일 큰 행복이다. 2006년 여든 세 살 프랑스 정치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이 20여 년 전 불치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자 자기의 꿈과 취미생활을 접고 산수 좋고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가 아내와 행복하게 살다 생을 마감한다.
1990년대 초 일본에서 아흔 살 노인과 치매를 앓던 아내가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실종됐다. 일본 방송국이 노부부의 아들과 함께 몇 달 동안 두 사람 행적을 쫓아 드라마를 제작했다. 신용카드 사용을 추적해서 조사를 해보니 부부는 옛 신혼여행지에서 부부가 즐겨 올랐던 산을 거쳐 두 사람이 자주 갔던 온천에서 생을 마감했다. 남편의 외투 주머니엔 동전 몇 십 엔만 남아 있었다. 부부는 은행에 저축한 돈을 다 쓴 뒤 함께 바다로 첨벙첨벙 들어가서 인생을 끝내는 마지막 ‘추억여행’으로 달고 오묘한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다.
1912년 타이태닉호가 침몰할 때 뉴욕 메이시백화점 주인 스트라우스의 아내는 여자들에게 우선 내준 구명정에 오르지 않았다.“우리 부부는 40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나 혼자는 살 수 없습니다.” 그녀는 구명정이 부족해 타지 못한 남편과 함께 가라앉는 배에 남았다. 두 부부는 함께 손을 꼭 잡고 바다에 수장(水葬)되면서 행복한 인생을 마친다. 그리스신화에서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는 한날한시 죽게 해 달라고 제우스에게 빌어 소원을 이룬다.
동양에선 “함께 늙고, 죽어 한 무덤에 묻히자”는 사랑의 맹세를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고 했다. 필자는 부인 또는 남편의 죽음에 장사를 치룬 후 죽음을 택하는 사람을 몇 사람 보았지만 참 행복한 죽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의 이상(理想)은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같은 날 죽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옛사랑에 빠져 하염없는 눈물 흘리며 통곡해도 소용이 없다. 살아 있을 때 서로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이 세상에 죽음까지 공유하며 살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 워싱턴공항공단 찰스스넬링 회장이 6년 동안 치매를 앓아 온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 지극정성 수발(鬚髮)을 하다 세상을 함께 떠났다는 것이다.
그는“아내를 수발하는 것은 60년 동안 받은 뒷바라지의 빚을 갚는 일”이라고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였다고 한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행복이 깨지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다른 남녀가 고락(苦樂)을 함께하며 살다보면 얼굴도 닮아가고 성격도 조금씩 닮아간다.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말투, 걸음걸이까지 비슷해진다. 그래서 오래 같이 산 사람은 뒷모습도 닮고 얼굴 모습도 남매같이 닮는다. 결혼은 일생을 함께 가꾸어 가는 예술이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상, 서로를 참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지나친 이기심 때문이다.
부부는 언제나 참고 서로를 소중히 생각하며 살 때 행복의 Ticket를 받을 수 있다. 이 세상 끝날 때 까지 고락을 함께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소망을 품고 사는 동혼동사(同婚同死)의 마음으로 살 때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글/ 박태원(본지논설위원, 양주사랑포럼회장, 예원예술대학교(양주캠퍼스)발전협의회장, 초성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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