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의 '정의와 조화, 그리고 평화'
정의와 조화, 그리고 평화
플라톤에 따르면 천성적으로 배움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고, 격정적인 부류가 있고 돈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다. 이들 각각의 성향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충실하게 하되, 그들에게 필요한 덕목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게 다른 일들에 관여하거나 간섭하게 되면 혼란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정의로운 국가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각각은 무지, 격정 그리고 욕구 등에 해당하는 인간의 천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만약 통치자가 무지하거나 군인이 용기가 없거나 상인이 절제가 없다면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부정의한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경우에 비추어 보아도 타당한 말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않고 쿠데타를 일으켜 통치자가 되려고 하거나, 상인이 절제를 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신의 이익만을 취한다고 한다면, 정의로운 국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각각은 자신의 본성에 맞는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하되, 그 본성에 맞는 충실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플라톤은 개인의 건강에 관한 유비를 통해 설명한다. 만약에 머리, 가슴, 배가 각각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가슴이 머리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하려고 하거나, 배가 머리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뭔가 균형이 맞지 않고,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각각의 역할에 조화가 깨진 것이 부조화이고 이 부조화가 바로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관점은 고대인들의 질병관과 일치한다. 근대 이후 해부학과 면역학에 기초한 의학이 발전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질병의 원인은 몸의 각 지체의 균형이 파괴된 것에서 보았다. 이는 고대 인도인의 의학이나 그리스 그리고 고대 중국인의 질병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결국 이러한 은유를 통해 플라톤은 건강한 국가를 꿈꾸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으로서의) ‘훌륭함’(훌륭한 상태:arete)은 일종의 혼의(정신적인) 건강(hygieia)이요 아름다움(kallos)이며 좋은 상태(euexia)인 반면, ‘나쁨’(나쁜 상태: kakia)은 일종의 혼의 질병(nosos)이요 추함(aischos)이며 허약함(astheneia)인 것 같으이.”
올바름이 결국은 몸의 건강에도 좋고, 이득이 된다는 것을 플라톤은 역설하고 있다. 올바른 것을 행하며 훌륭한 것들을 수행하고 올바르게 되는 것이 남들이 알건 모르건 간에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즉 정의 곧 올바름은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금도 물지 않고 처벌을 통해 교정을 받은 일도 없다면 결코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개인이 올바름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실천을 하면, 전체적으로 국가에 이득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이러한 정의관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개인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리주의적 관점의 원형이 들어 있다. 이러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소크라테스의 윤리적 주지주의와 더불어 서양 윤리학의 두 축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법을 지키는 것이 이익인가 아니면 법을 어기는 것이 이익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되고, 신호등을 지키는 것이 전체적으로 이익인가 아니면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이익인가라는 물음과도 연결될 수 있다. 『국가』에서 트라시마코스의 입장은 강자가 법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상황, 그리고 법을 위반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보는 상황에서 자신이 손해 본다는 느낌을 반영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다 부정의하고 부도덕 한데 나만 올바르다고 해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정말 내가 혼자 정의롭다고 해서 그것이 정의가 될 것인가라는 물음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플라톤은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본질로서의 정의는 결코 포기될 수 없는 가치임을 역설한다. 플라톤의 정의론은 돈으로 지배하고 강자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상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몸의 각 지체가 조화롭지 못하여 질병에 걸리는 것처럼, 한 사회의 각 지체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이익만을 쫓아간 사회가 걸린 질병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정의와 조화 그리고 평화는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글/ 서 기 원(본지논설위원, 의정부 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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