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라는 제2의 광복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자 수첩
통일이라는 제2의 광복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광복절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의 ‘광복절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1절)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 (2절)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패하여 항복하게 되어 한반도가 일제의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이다. 광복은 문자 그대로는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고 있어 즉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특히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여 8월 15일은 우리 민족에게 더더욱 큰 의미를 주는 날이기도 하다. 이렇듯 광복절은 우리 민족에게 매우 귀중하고 무척이나 뜻있는 날이다.
당시 국제적 상황을 보면 제2차 세계 대전은 1943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차 연합군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고, 그해 11월말에 미(美)·영(英)·중(中) 3국은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1945년 5월에 나치 독일이 항복하였고, 8월 8일에는 미(美)·영(英)·중(中)·소(蘇)의 4개국이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핵폭탄을 맞은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였다. 우리 민족은 카이로 선언과 그것이 다시 확인된 포츠담 선언과 함께 목숨 걸고 일제와 싸워온 우리 민족의 오랜 투쟁을 통해서 일제의 학정으로부터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광복절을 부정하는 세력도 있었다. 이른바 건국절 개칭 논쟁이다. 2003년 지금은 겉으로는 붕괴된 우익단체인 뉴라이트에 의해서 현재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의 변경을 추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미 1919년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 정부가 수립되어 건국되었다가 1948년 정식정부를 수립한 것인데,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년으로 본다면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 논란만 키웠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광복절은 희망과 축제의 날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새로운 논쟁과 억압의 날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우리의 완전한 힘으로 쟁취한 광복이 아니어서 그럴까? 아니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우리는 또 다른 억압을 받게 되어서 그럴까? 1945년 일제가 물러간 한반도는 미국과 당시 소련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해방은 독립이 아니었으며 또 다른 억압이 시작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1948년과 1949년에 남과 북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과 미국은 물러갔지만 우리 민족은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에 눈물만 흘리게 되었고 이어 1950년은 우리 민족의 최대 불행이었던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겨우 지나자마자 막 바로 분단시대로 나아갔으므로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이라는 우리 민족의 최대의 과제를 안겨준 계기가 바로 8월 15일 광복절이기도 하다.
우리는 민족 최대의 숙제인 통일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특히 의정부 지역을 중심으로 1997년에 창립된 ‘통일문화재단(이사장 서기원)’은 16년 동안 꾸준히 통일은 문화로 풀어야한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예술제, 연극제, 전시회 등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통일운동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이런 문화운동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세력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접근의 통일운동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서로 협력하고 믿으면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끝으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광복절은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날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억압의 날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통일이라는 제2의 광복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우리들의 남·북 문제를 하나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글/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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