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찬송가'
생각해 봅시다
찬송가
박태원의 '찬송가'
나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송을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있든 없든,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사춘기 때 갑자기 집안이 기울어 방황하던 내 자신을 생각하며 회개하는 심정 때문일 것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주님을 만나 새 인생의 길을 살아가는 나 자신의 처지와 같음을 고백한다. 이 찬송을 작사한 존 뉴톤은 선장의 아들로 태어나 거친 바다와 싸우는 뱃사람이며 아프리카 흑인들을 사고파는 노예무역 상인이었다. 존 뉴톤은 어렸을 때 어머니의 신앙을 보고 경건한 삶을 살다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신앙생활을 멀리하고 방탕한 생활자로 아버지와 함께 노예무역을 한다.
그러다 자기 자신도 노예가 되기도 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다시 선장이 되어 노예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러던 1748년 5월 10일 새벽 1시, 배가 풍랑을 만나 죽음의 한 가운데 서게 되었다. 선원들과 흑인노예들과 함께 오직 살아야한다는 신념으로 버텨 겨우 살 수 있었다. 그 때 존 뉴톤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너무나 많은 죄를 지은 자로서 깊은 바닷물에 빠져 죽고 싶었던 존 뉴톤은 하나님을 만난 후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된다. 그가 55세 되던 1779년,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송가를 작사하게 되고, 이 찬송은 많은 신앙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회개하는 찬송가가 되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놀라운 주님의 은총! 너무나 달콤한 주님의 음성, 나 같은 비천한 자를 구해주시니!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나는 한 때 버림받았지만, 지금은 구원받았고, 소경이었지만 지금은 볼 수가 있지요.
나는 이 찬송을 부르면 딱딱하게 굳었던 심령이 눈 녹듯이 녹는다. 찬송은 심금을 울릴 뿐만 아니라 영혼을 맑게 하는 신비한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찬송가를 부르면 기쁨이 샘솟는다.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는 날은 바로 오늘이지, 내일이 아니다. 누구나 언제 죽음을 맞이할는지 모르는 게 인간 아닌가? 뜨거웠던 청춘이 지나간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찬송은 열정에 쓸려 사라져간 진실을 건져 올리는 희망이다. 세상에는 성악가, 음악선생, 시각장애인,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 담즙 주머니를 차고 나온 환자, 농구선수, 배우, 의사, 최고경영자(CEO) 등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다. 이 모든 사람이 찬송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한자리에 모여 찬양을 한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될 것이다. 아픈 사람이 스스로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꿈을 꾸듯 찬송가를 불러보라. 영혼이 맑아지며 초라했던 자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자기의 품위도, 체면도, 나이도 내려놓고 어린 아이처럼 찬송가를 부르다 보면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다.
성가대원들이 각자 아무리 찬양을 잘해도 혼자선 아름답고 조화로운 신비의 찬양이 완성될 수 없다. 성가대 지휘자는 최고의 예술가이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 음악을 아는 사람, 좌절을 겪은 사람, 외로운 사람, 아픈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 속에서 지휘자가 이끌어낸 분위기는 따뜻한 감동 그 자체이다. 나이가 주는 내공에 사랑을 입혀 삶의 찌든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찬송을 불러본 사람만이 하나님의 섭리를 맛볼 수 있다. 솔개는 40년이 되면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부리와 발톱을 쪼아 피가 철철 흐르는 아픔의 고통을 참고 비상하면 30년을 더 살 수 있고, 포기하면 40년에 생을 마감한다.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거듭나서 죽음을 준비하며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찬송은 아름다운 선택의 안내자다. 삶의 무게에 눌려 꿈을 잃어버린 사람, 나이의 무게에 눌려 설렘을 잊어버린 사람, 병마의 기세에 눌려 기진맥진했던 사람의 표정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힘이 있다. 찬송가를 부르면 소경이 눈을 떠 아름다운 세상을 보듯 새로운 세계를 맛 볼 수 있다. 찬송가는 나이를 잊게 하고 병마와 무기력증, 화석처럼 굳어진 마음을 녹여준다. 마음속의 아픔이 기쁨으로 변화하고 삶의 전체를 치유하게 된다. 오늘도 찬송가를 부르며 마음껏 행복의 여행을 떠나가려고 한다. 글/ 박태원(본지 논설위원, 서정대학겸임교수, 양주사랑포럼회장, 초성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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