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의 당신들의 천국
시론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의 소설『당신들의 천국』의 이야기는 나병환자들이 사는 소록도에 조백헌 원장이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이 소설은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진 소설이면서 동시에 알레고리(allegorie)적인 특징이 강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총3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1부에서 원장은 모범적인 통치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환자들이 서로 단결하여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조원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조원장은 부임하면서 소록도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면서 새로운 건설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시도는 소록도 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전의 원장도 똑같이 새로 부임한 원장처럼 건설을 시도하고 인간개조를 강조하였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동상을 건립했기 때문이다. 2부에서 조원장은 소록도 주민들의 민심을 반영하여 서로 동등한 차원에서 계약을 하며 나름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조원장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소록도 주민들과 원장사이의 간격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한 사람은 정상인이고 다른 한 사람인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계약관계 위에서 서로 만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지배·피지배 관계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조원장은 소록도를 떠나게 되고 나중에 5년 후에 개인 조백헌의 신분으로 소록도에 되돌아온다.
이 때 조백헌은 소록도 주민들의 입장에서 도우려고 하지만, 소록도 주민들과 운명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여전히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즉 단지 직함의 변동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조원장의 의식 전체가 나환자들과 일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지배·피지배의 권력관계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으며, 자칫 누군가를 돕는다고 하면서도 진정으로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할 때 가질 수 있는 문제 곧 시혜의식이나 우월한 존재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타인에게 다가갈 때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예리하게 잘 파헤친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오늘 우리 정치 현실과 대비시켜 보면 묘한 알레고리가 성립한다. 조백헌의 첫 번째 시기는 ‘잘살아보세’를 외쳤던 정치가를 연상시키고, 나름 계약관계에 입각하여 소록도 주민들과 하나로 되려고 노력하였던 상황은 민주화된 정부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의 인간 조백헌의 모습은 현재 표심을 얻기 위해 민생행보를 계속하는 후보자들을 연상시킨다.(물론 소설에서 조원장은 다시 원장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조원장으로 대표되는 정치가들의 한계는 언제나 소록도 주민들의 욕구와 희망 즉 서민들의 욕구와 희망을 같이 할 수 없다는 한계이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정치가들이 시혜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스스로 연대하여 정치에 참여하게 하고, 스스로 자신이 정치적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서민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려는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록도 주민 혹은 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원장 혹은 정치가들이 외치는 천국은 우리들이 원하는 ‘우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에 의한, 당신들을 위한,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라고. 정치가가 국민에게 다가서지 못할 때, 정치가들의 구호는 그야말로 우리 서민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말잔치로 그 쳐버릴 뿐이다.
우리 국민들이 모두 좋아하는 ‘우리들의 천국’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 서민들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할 통치자는 누구일까? 서민의 기쁨이 통치자의 기쁨이 되고, 서민의 슬픔이 통치자의 슬픔이 되는 상황은 어떻게 가능할까?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치를 구현할 통치자는 누구일까? 대선을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글 서기원(목사, 본지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목)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